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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연재소설 역사 속으로…'아라리난장' 606회로 막내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주영씨의 '아라리 난장' 606회를 끝으로 중앙일보는 연재소설시대를 마감한다.

구한말 신문 등장과 거의 동시에 선 보이기 시작해 민족의 삶과 역사를 담아온 연재소설은 이제 신문에서는 종언을 고한다. 전문화.다양화 시대를 맞아 신문연재소설의 기능을 문예지.단행본에 온전히 넘기려는 것이다.

최초의 신문연재소설은 1896년 한성신보에 실렸던 '신진사 문답기' 로 알려진다. '한국 개화기 신문연재소설 연구' 를 펴낸 한원영 교수에 따르면 개화기에 창간된 1백20여종 신문 중 30여개 신문이 연재소설을 실었다.

민족지 계열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작품을, 친일 계열의 신문은 친일적.오락적 작품을, 그리고 종교지는 종교성을 띠는 작품 등 그 신문의 발간 목적에 따른 소설들을 주로 실었다.

그러다 만세보가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 를 실으면서부터 작가의 이름을 드러내놓고 연재소설은 한국 현대문학을 개척해나가게 된다.

이광수의 '무정' , 홍명희의 '임꺽정' 을 비롯, 김유정.이효석.현진건.백신애.강경애.박화성.최정희.정비석.방인근.김말봉 등 한국문학을 일군 작가들이 일제하에서도 매일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해방 이후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신문 지면을 통해 대중 독자들과 시대와 삶을 함께 울고 웃었다.

1개지에 한 편씩 연재되던 소설은 60년대 후반 들어 두 편으로 늘어났다. 한편은 현대물, 또 다른 편은 역사물이 상례였다.

그러다 80년대 후반에는 주말에 한 면을 통틀어 잡는 주간연재소설이 가세해 신문연재소설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90년대 쇠퇴기를 맞아 신문연재소설은 한 편으로 줄어들었다.

본지는 65년 창간과 함께 박종화의 근대화를 역사적으로 조명한 '아름다운 이 조국을' , 박영준의 도시.농촌의 애정문제를 다룬 '새벽의 찬가' 를 싣기 시작했다.

66년에는 베트남 전장을 다룬 선우휘의 '물결은 메콩강까지' , 67년 김승옥의 '내가 훔친 여름' , 그리고 정연희.박경리씨의 작품이 뒤를 이었다.

이호철.강신재.장덕조.김동리.김광주. 유주현.서기원. 박순녀.최인훈.최인호. 조해일.박범신.박양호.한수산.이문열.오정희.이순. 조선작.김주영.김성동. 황석영.김원일.강석경.송영. 신경숙.이영희.조성기.박상우씨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독자들과 하루하루를 함께했다.

73년 '내 마음의 풍차' 연재를 시작으로 본지 독자와 만나기 시작한 최인호씨는 이후 '도시의 사냥꾼' '적도의 꽃' '길 없는 길' 등 4편을 연재하는 기록을 남겼다.

김주영씨의 '활빈도' , 김원일씨의 '늘 푸른 소나무' 는 1천회에서 1천5백여회에 이를 정도로 장기 연재됐다.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엔 필화사건도 있었다. 80년 '욕망의 거리' 를 연재하던 한수산씨가 5공 신군부의 고문실로 끌려가 호된 고문을 당했다. 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빗대 비아냥거렸다는 이유였다.

황석영씨는 86년부터 민족의 대서사시 '백두산' 을 주간연재하다 북한으로 가 김일성을 만나는 바람에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60~80년대 신문의 연재소설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것은 암울했던 정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시대의 울분을 토해내고 혹은 삭일 수 있었다.

90년대 들어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연재소설의 그런 역할은 끝난 것 같다. 35년간 독자와 함께 해온 신문연재소설은 1999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졌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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