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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죽은 신' 다시 살아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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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그의 명저 '국부론(國富論)' 에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그는 시민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심에 입각한 경제적 행위가 결과적으로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이러한 사적 이기심과 사회적 번영을 매개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 이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한마디로 하느님, 즉 신(神)을 지칭하는 말이다. 신은 인간의 모든 사회.경제.역사.문화의 발전에 보이지 않는 손의 매개체로 개입하고 있음을 뜻하는 유신론적 발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간의 모든 영역에 창조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학설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광인(狂人)니체였다.

그는 2천년 동안 유럽의 문명을 지배해온 그리스도교의 몰락을 예견했다. 인간들은 신에 의해 왜소화되고 노예화 됐으므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초인(超人)을 이상으로 삼고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다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죽었다. "

생전에는 거의 이해되지 않았던 광기에 사로잡힌 철학자 니체의 이 한마디는 20세기를 지배하는 최대의 화두가 됐던 것이다.인간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진 신은 이미 죽었으며,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함으로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뛰어난 초인 만이 권력을 통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니체의 이 사상은 결국 무신론적 허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잉태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러시아혁명이 일어났으며 세계 곳곳에서 공산당 정권이 탄생됐다. 그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니체는 '전쟁의 신' 으로까지 추앙받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일어났던 것이다.

한 나라의 국지전으로 일어났던 6.25전쟁은 바로 그러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리전으로 6백만명의 사상자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서너배에 해당하는 온갖 무기와 폭탄들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 투하됐다. 그 결과 한반도는 20세기에 아직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에 일어났던 그 많은 혁명과 전쟁들은 결국 인간의 초인적인 힘으로 권력을 창출하려는 무신론적 허무주의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이는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면서 빛을 인간의 문명 속에 끌어들인 이후부터 과학은 마침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61년 소련의 우주비행사 가가린은 지구 상공을 선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지구는 푸른 빛이다. 그러나 아무 곳에서도 신은 보이지 않는다. "

그리하여 복제양 돌리가 탄생함으로써 인간도 마음만 먹으면 복제할 수 있다는 끝간 데를 모르는 과학만능의 20세기말에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치관의 선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과연 신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신은 여전히 죽어버렸나. " 그런 의미에서 20세기에 일어났던 모든 혁명, 모든 전쟁, 모든 과학, 모든 문화, 모든 사회현상들은 결국 유신론인가 무신론인가 하는 양자택일에서 각자 상극의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었다.

신은 이미 죽어버렸으므로, 설혹 신이 살아 남아 있다 하더라도 복잡하게 진화하고 발전돼가는 현대문명에 따라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신전 속에서나 존재하는 낡은 신이야말로 있으나마나한 존재였으므로, 오직 초인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독재자들이 20세기 동안 줄곧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히틀러.무솔리니.마오쩌둥.김일성.스탈린.레닌.일본의 천황 히로히토, 그리고 박정희. 신은 이미 죽어버렸으므로 신이 책임져야 할 인간들의 기쁨, 인간들의 열락(悅樂)은 이미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쾌락으로 대치됐다.

술과 마약, 그리고 도박과 끊임 없는 물질중독.소비중독은 죽어버린 신 대신 물신(物神)으로서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성(性)이야말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최고의 감미료(甘味料)였던 것이다.

이제 한 세기가 저물고 있다. 20세기 폭스사의 영화자막처럼 1백년에 걸친 한 세기의 상영이 끝나고 있다.

그리하여 21세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 천년이 오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야말로 이렇듯 보이지 않는 손을 인정하는 유신론과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무신론이 맞서 싸운 격전장이었으며, 시험장이기도 했다. 그러면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무엇이 우리의 역사를 움직이게 될 것인가.

신은 여전히 미라의 상태로 관 속에서 죽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은 여전히 광장에 나아가 지나가는 사람으로부터 동전을 구걸하는 걸인처럼 무력하기 짝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의 철학자 샤르댕의 말처럼 여전히 신은 인간들의 창조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예수가 죽은 뒤 사흘만에 부활한 것처럼 하루의 천년과 이틀의 천년을 거쳐 마침내 사흘째가 되는 새 천년엔 '신이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

그렇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가오는 21세기에도 보이지 않는 손의 유신론과 신은 죽었다는 무신론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보다 교묘한 방법으로 보다 치열하게 21세기에 거는 낙관적인 희망과 비관적인 절망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최인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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