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나의 송사] 이선복 서울대교수·고고미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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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우리의 관심 밖이었던 문화재

해가 바뀌고, 세기가 바뀌고, 새 천년기가 시작된다고 평범한 삶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더구나 역사와 문화의 잔해를 차가운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며 먹고사는 이로서, 헌 천년기의 마지막 세기말이 되었다고 굳이 이를 보내는 소감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딘지 어색하기만 하다.

나아가,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 중 단지 작은 부분만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아는 주제에 문화재와 관계를 지어 지난 백년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가 하품할 일이다.

그러나 객석의 관객에게는 화려한 무대만이 눈에 들어오듯 누구나 되뇌는 '소중한 문화유산' 에 실제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거나 혹은 애써 알고자 하는 이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이에 생각이 미치니 비록 빛나는 20세기의 송사는 아닐지언정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과거를 보내는 만가 한 토막쯤은 부를 수 있을 듯하다.

문화재와 관련지어 바라보면 우리의 20세기는 혼란과 아픔의 시절이었다.

그것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에서 비롯됐다.

그렇기에 혼란은 오래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도덕적 역사관 아래에서는 문화재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어떤 이는 문화라는 말이 이미 18세기에 사용되었다고도 하고 다른 이는 실학자들의 글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런들 무엇이 달라지랴. 소위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가차없이 그 흔적을 말살해버린 조선시대의 전통은 아직까지 뿌리깊게 남아 있다.

외세의 탄압 아래에 있었던 문화재에 얽힌 일을 따로 얘기함은 차라리 사치다.

그래서 이 송사는 그 후반부에 대한 회고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지만 그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물론 매장 문화재만 하더라도 무녕왕릉.천마총.황룡사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정도로 대발견을 해낸 것을 비롯한 수많은 성과가 있었다.

온 백성을 들뜨게 한 이런 발견들은 정녕 큰 소득임에 틀림없다.

불모의 땅에서 거둔 것이었기에, '새로운 과거' 를 우리 눈앞에 펼쳐놓은 이런 소득은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한 그 발견의 이면에는 또 다른 얘기들도 있다.

뿌리가 없었기에 유래한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오는 비극적 사건과 차라리 울어야만 할 희극적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딱히 누구에게도 책임 지울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때로는 우둔함과 무지와 무책임과 탐욕에서 빚어진 이런저런 사건과 더불어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망가지고 사라졌는가.

그런 희비극이 끊이지 않았음은 정부의 역할부재, 문화정책 부재를 뜻함에 다름 아니다.

남의 덕으로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었기에 치러야 했던 분단과 전쟁이라는 혹독한 대가는 문화재 부문에도 예외 없이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인적 자원을 독점한 북쪽에서는 해방 직후 제도 정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지만, 남쪽에서는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극소수의 선구자들만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우리는 문화재의 관리와 관계된 최소한의 법규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60년대를 맞았다.

4.19와 5.16을 겪고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고 문화재관리국도 만들어진 것이 우리 사회가 문화재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아서가 아니었다.

이는 단지 창덕궁에 보관하고 있던 궁중유물을 빼돌리던 자들이 증거인멸을 위해 저지른 방화사건의 뒷마무리를 위한 응급조치에 불과했다.

제도의 탄생에 얽힌 이런 비밀이야말로 문화재를 다룸에 있어 20세기의 대한민국이 벗어날 수 없었던 태생적 한계이리라.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화재를 가장 잘 대접한 것도 6, 70년대의 독재정권이었다.

최고권력자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국민의 관심을 높였고, 경주에 대한 투자를 비롯한 선구적 조치들이 취해졌다.

비록 그런 조치가 훗날을 위한 전반적인 제도의 정비로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이후 그만한 안목을 가진 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높은 교통사고 사망률을 비롯한 각종 사회악이 군사독재 탓이라는 이들에게는 문화재의 보호.보존.관리.연구.교육.유통 등등 모든 면에서 질서가 잡히지 못한 것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때문일 테지만.

'문민정부' 도 그랬지만, '국민의 정부' 라고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걸맞은 적절한 제도와 일관된 정책의 필요성을 느끼기나 할까. '문화의 세기' 를 맞아 돈이야 펑펑 쓰겠지만 말이다.

나라 살림을 하며 문화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의 보존과 보호에 필요한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빈말이라도 할 줄 아는 정치인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정부의 무관심과 무대책 속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의 불법적 문화재 수집과 유출은 계속되었다.

이것은 자연히 '전국토의 도굴판화' 를 가져왔다.

70년대 말부터 곳곳에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생기며 투기 대상으로 문화재의 가치가 커진 만큼 도굴도 더욱 활개치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에 목도한 문화재의 대량파괴는 일제하의 문화재 파괴를 새 발의 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부와 명예와 권세를 좇는 부나비들이 속절없이 떼지어 다니고,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는 이들이 행세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너도나도 전문가인 세상에서 누구 말이 옳은지 판단할 수도 없게 되었다.

또 바로 이런 세월이었기에, 순진한 이들의 문화적 성감대나 살살 긁어주며 실체 없는 역사적 자존심과 문화적 자긍심을 한껏 부풀리기나 하는 말과 글이 주인행세하며 설치는 세상이 된 것도 당연하리라.

'20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문화재는 무슨 의미였는가' 라는 물음은 경부고속철도 경주노선 문제가 답해주었다.

문화정책 부재를 가장 비극적이자 희극적 방식으로 보여준 저 무지몽매한 결정도, 목숨을 걸고 벌였던 반대운동도 이제 20세기와 함께 띄워 보내야 한다.

대책 없이 박물관 건물부터 부수고 저 혼자 우쭐대는 어리석음도 돌아오지 않을 세월 속의 이야기로 끝나야 한다.

며칠 후 다가올 새 세기는 항상 지당할 수밖에 없는 고매한 말씀이 판치는 세상이 아니라 고개 숙인 이들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문화가 정치의 화초기생 노릇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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