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4국' 의표 찌르는 역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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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4국
[제3보 (38~54)]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숨쉴 새 없이 급박한 흐름 속에서도 고수들은 한가닥 여유를 찾아낸다. 지금 우하에서 시작된 험악한 정석이 태풍처럼 판을 휘감아 좌상 쪽으로 비화한다. 흑▲로 축머리를 강타할 때 38의 수비는 촌각을 지체할 수 없다. 이세돌9단은 39부터 좌상을 압박하며 대가를 찾아 나섰고 그런 와중에도 우하의 정석은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채 위험스러운 공기를 품어낸다.

'참고도' 백1로 한점을 빵 따내면 만사가 개운하다고 한다. 모든 위험과 걱정은 사라지고 이제부터 강력하게 상대를 공격할 일만 남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이 빵때림은 좋은 곳이다. 그러나 흑2로 잡는 모습도 철옹성 같아 그 실리와 잠재력이 무시무시한 느낌을 준다.

이창호9단은 빵때림을 유보한 채 좌상부터 두어 두점을 희생하고 선수를 잡아냈다. 바꾸어 말하면 흑의 이세돌은 귀의 두점을 잡고 만족했다. 사실은 이곳에서 전략의 명암이 갈렸다. 우하 일대가 급박한 상황에서 흑이 후수를 잡은 것이 문제였다.

관전하던 프로들은 이제야말로 백은 한점을 따낼 차례라고 입을 모은다. 한데 이창호의 다음 수는 50. 거의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그는 상대가 제공한 간발의 여유를 놓치지 않고 역공에 나섰다. 흑을 선공함으로써 하변의 실리에다 중앙의 엷음도 보강하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한다. 이창호 바둑이 참 아슬아슬해졌다. 두텁게 따낸 뒤 긴 호흡으로 판을 이끌 것으로 믿었던 이창호가 간발의 순간에 공격으로 돌아서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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