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새천년 도전현장] 5. '교수 사장님' 대학·벤처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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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호서대 천안캠퍼스에는 연중 거의 불이 꺼지지 않는 5층짜리 건물이 있다.

호서대가 95년 충남지역에 한국판 실리콘 밸리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충남도청과 손잡고 문을 연 호서 신기술창업보육센터(TBI)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로 성공을 낚아채려는 벤처사업가 28명이 10~15평 규모의 개인 연구실에서 쉴 틈도 없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호서대 김홍(金鴻)벤처대학원장은 "충남도에서 연간 3억원을 받아 벤처사업가들에게 1인당 연구비 1천만원씩을 지원하고 교수 1명(벤처닥터)과 연구원 2~3명을 배치, 연구를 도와주고 있다" 며 "벤처사업가는 실패하면 1천만원을 갚지 않아도 되고 사업화에 성공하면 발행주식의 5%를 장학금.벤처지원기금 등으로 학교에 기증해야 한다" 고 설명했다.

대구대 겸임교수인 최인석(崔仁碩.41)거명하이텍 사장은 "센서를 이용, 교통량에 따라 가변차로.버스전용차로가 자동 조절되는 장치를 연구해 지난 5월 특허도 받았다" 며 "보육센터의 기술지원이 큰 힘이 된다" 고 말했다.

보육센터내 벤처기업들의 실적은 매출 1백억원 이상, 시제품 45개 개발, 특허출원 53개. 또 보육센터를 졸업한 28개 벤처기업 가운데 지리정보시스템을 개발한 플러스정보통신㈜ 등 15곳은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이밖에 호서대는 천안캠퍼스에 21개 벤처기업이 입주한 인터넷 창업보육센터를, 아산캠퍼스에는 42개 창업 동아리가 들어 있는 학생벤처회관을 두고 있다.

80년 호서대를 설립한 강석규(姜錫圭.86)총장은 교수들의 벤처 창업을 권장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사재 60억원으로 교수 40명에게 연구비를 5백만원씩 지원했고 11명에게는 3억원까지 무담보.무이자로 빌려줘 11개 벤처기업을 탄생시켰다.

호서대는 이러한 특성화 전략으로 올해 교육부가 실시한 두뇌한국(BK)21 과학기술분야 사업에서 쟁쟁한 대학들을 제치고 '벤처 특화대학' 으로 선정됐다.

한국 대학도 변하고 있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계기로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입시위주의 획일적 초.중.고 교육과 경쟁이 없는 대학풍토가 창의력있는 인재의 양성을 가로막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것이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은 지난 4월 "한국의 대학교육이 국가경쟁력에 미친 공헌도는 주요 47개국 중 꼴찌" 란 내용을 담은 국제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충격은 이제 대학개혁을 부추기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BK21사업에서 '벤처창업형 중소기업 육성사업자' 로 선정된 숭실대 이성섭(李性燮)경상대학원장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중심 기업이 급성장한 데는 스탠퍼드대학의 기술.경영혁신 방법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며 "앞으로 경상대 전체가 중소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체제로 변신할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국제지역원은 선진국에도 아직 없는 전자무역법을,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는 한약재.자연약초 등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천연물 신약연구 개발촉진법' 을 각각 정부 관련부처로부터 발주받아 연구하고 있다.

대학과 정부가 손잡고 21세기 국가경쟁력 향상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부터 연간 2천억원씩 7년간 총 1조4천억원이 투입되는 BK21사업이 정착되면 변화의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의학생명.정보통신 등 첨단.기초과학분야에서 연간 2천명의 우수한 박사 인력이 배출된다.

이화여대 장상(張裳)총장은 "이제 우리 대학들도 선진국 대학과 경쟁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고 말했다.

대학에 뒤질세라 신흥대(포천 이동막걸리).대구보건대(안경산업) 등 20여곳은 향토산업 육성에 나서는 등 남다른 특기를 확보하려는 전문대도 많아졌다.

이현청(李鉉淸)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선진국은 국가.사회가 공동으로 우수한 교수의 양성과 재정투자, 사회수요에 맞는 교육과정 개발을 통해 대학경쟁력 강화에 힘써왔다" 며 "우리도 이같은 노력을 꾸준히 하면 국제경쟁력이 높아지게 될것" 이라고 말했다.

오대영.이무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