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소기업 대출 은행 ‘CIT’ 파산보호 신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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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의 중소기업 대출 전문 은행인 CIT그룹이 1일(현지시간)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101년 전통의 CIT그룹은 804억 달러 자산과 691억 달러 부채를 안은 미국 20위권 은행이다. 파산보호 규모로는 리먼브러더스 홀딩스, 워싱턴 뮤추얼, 월드컴, 제너럴 모터스에 이어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다.

CIT는 지난해 가을 금융위기가 터진 뒤 중소기업 대출이 무더기 부실화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말 미국 정부로부터 23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올 7월 다시 자금난에 빠져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주주·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안을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파산보호 수순을 택했다.

◆금융시장 파장은=예고된 악재이긴 했지만 CIT의 파산보호 신청이 금융시장에 미친 충격은 의외로 컸다. 지난주 미국 증권시장이 급락한 데다 미국 경제의 회복이 순탄치 못할 거라는 예상이 잇따라 시장에 불안감이 확산하던 차에 터졌기 때문이다. 올 연말부터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이 불거져 CIT 파산보호 신청과 맞물리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중소기업 대출에 부동산 담보대출까지 부실화한다면 이를 견딜 수 있을 금융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나 AIG 구제금융 조치만큼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크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CIT가 파산보호 신청 전에 채권단과 사전 구조조정안에 합의한 것도 파국보다는 회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 7월 CIT의 구제금융 지원 요청을 묵살한 것도 이런 계산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CIT가 파산하게 되면 리먼브러더스, 워싱턴뮤추얼, 월드컴,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 규모가 된다. 뉴욕에 위치한 CIT그룹 본사로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뉴욕 AFP=연합뉴스]

◆중소기업 대출 막혀=CIT의 파산보호 신청은 자칫 미국 밑바닥 경제를 골병 들게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이후 그나마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준 은행은 CIT가 유일했다. 앞으론 CIT에 기대기 어렵게 됐다. 정부도 포기한 마당에 파산보호 신청을 한 CIT에 대출 재원을 대줄 곳이 있을 리 없어서다.

2007년 400억 달러에 달했던 CIT의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이미 올 상반기 44억 달러로 쪼그라든 상태다. 돈줄이 말라버리면 중소기업 연쇄 도산은 피하기 어렵다. 이는 다시 중소 지방은행 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주에만 9개 지방은행이 폐쇄됐다. 이로써 올해 파산한 은행은 모두 115개로 늘었다. 120개가 파산한 1992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CIT는 어떻게 되나=파산보호 신청은 한국의 법정관리와 비슷한 조치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모든 빚 상환은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법원과 협의하에 구조조정을 진행하게 된다. CIT는 성명을 통해 “채권자의 85%가 사전조정 파산계획에 동의했다”며 “이 계획에 의해 총 300억 달러 빚 중 100억 달러를 탕감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구조조정을 통해 앞으로 2개월 안에 파산보호에서 벗어나겠다는 게 CIT의 목표다.

CIT그룹은 … (2008년 기준)

-설립연도: 1908년 -주력사업: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자산규모: 804억 달러, -부채규모: 691억 달러,

미국 20위권 은행 미국 사상 5번째 규모 파산

-순이익: -69억8000만 달러 -직원수: 7300여 명  자료: CIT그룹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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