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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총사수 자리 오른 진종오 선수 “편하게 쏘라는 아내 말 따르니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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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아내가 ‘우승 못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니 편하게 하라’고 해요.”

세계 최고의 권총 사수로 우뚝 선 진종오(30·KT·사진) 선수에게 잘 쏘는 비결을 물었다. 그랬더니 진 선수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편하게 하고 있다”며 무심하게 되받아쳤다. 어쩌면 ‘무념무상’으로 표적에만 집중하는 자세야말로 제1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진 선수는 최근 2009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파이널대회 50m와 10m 권총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사격계 최고수 10여 명만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왕중왕전’에서 최고의 자리에 섰다. 그는 지난해 베이징올림픽(50m)을 시작으로 월드컵 파이널(50m)과 올해 창원 월드컵(50m), 뮌헨 월드컵(10m)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국제대회 5연패를 달성했다. 명사수로서 한창 물이 오른 그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권총을 쏜다고는 했지만 그만의 노하우는 존재했다. 그는 취미 생활로 삼는 낚시가 집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깨끗한 물과 드넓은 산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져요. 최근에는 바빠 자주 나가지는 못 했죠. 그래도 감독님 몰래 낚시하는 게 낙이에요.”

“이건 가르쳐주기 싫은데…”라며 잠시 망설이던 진 선수는 사격 전에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독백을 되뇐다고 털어놨다. “테니스 영화 ‘윔블던’에서 주인공이 서브를 넣기 전 마음속으로 다짐하던 말이 있어요. 저도 그와 비슷한 말을 사격하기 전 항상 외곤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주문인지는 밝히기를 꺼렸다. 그를 소총이 아닌 권총의 세계로 이끈 것은 선천적인 재능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사격장에 갔던 진 선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상하게 소총으론 표적지에 하나도 안 맞더니 권총으로 쏘자 신기하게 들어가는 거에요.”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사격에 입문한 진 선수는 “여갑순·이은철 선수가 소총 부문에서 메달을 따내니 다들 소총을 했죠. 하지만, 저는 권총이 소총보다 간편하고 대충 쏴도 잘 들어가기에 선택했어요.” 솔직한 말이라 밉지 않았다.

최근 경사가 이어졌다. 오스트리아의 한 권총 회사로부터 일련번호 ‘000001’과 자신의 영문 성 ‘JIN’이 새겨진 신제품 권총을 후원받았다고 한다.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앞으로 일이 잘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2006년 12월 결혼한 아내 권미리(27) 씨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다. “1년이면 집에 있는 날이 1달 정도 밖에 안 돼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죠. 돈 많이 벌어서라도 기쁘게 해줘야죠.”

글=오명철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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