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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이슈] 우라늄 0.2g이 던진 파괴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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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있는 실험용 '하나로 원자로'의 중심부. 한가운데 연료를 꼽는 6각형 노심이 보인다. 이번 실험처럼 천연 우라늄 중 가벼운 우라늄(U-235)을 대량 분리한 뒤 농축도를 높이면 연료로 쓸 수 있다. [중앙포토]

'무궁화 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일까.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연구진이 호기심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0.2g의 우라늄이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이를 놓고 마치 한국이 핵폭탄 개발을 시도한 것인 양 국제사회의 눈총이 따갑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 7명이 내한해 지난달 29일부터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소를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이들은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3일 사찰을 마쳤으며, 4일 출국한다. 소설가 김진명이 1993년 펴낸 '무궁화꽃…'는 한국이 핵을 개발하고,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가 국제 음모에 희생된다는 내용이다.

과학기술부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핵무기용이 아닐뿐더러 IAEA에 자진 신고한 것으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우라늄의 농축도를 밝힐 수는 없다고 했으나 한국원자력연구소 측에 따르면 약 10%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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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무기 제조에 필요한 90%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미국.일본의 일부 언론은 이 우라늄의 농축도가 80%에 이른다고 추측 보도했다. IAEA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의 농축도를 20% 이하로 규정해 놓고 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이은철 교수는 "우라늄 농축도가 90% 이상이 돼야 하고, 최소 10~15㎏이 넘어야 원자폭탄이 된다"며 "더구나 연구소가 사용한 레이저 방식은 농축 효율이 극히 떨어져 폭탄 제조에는 쓰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레이저 방식으로 농축도를 90%까지 끌어올리려면 수만번의 농축작업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등 핵 보유국이 채택하고 있는 원심분리기술은 수백번 정도만 되풀이하면 폭탄에 쓸 정도로 순도가 올라간다.

문제의 우라늄 0.2g은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밀봉된 채 보관돼 있다. 그 부피는 깨알보다도 작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원자력발전용 핵연료의 반응을 조절하는 연구를 하던 4~5명이 실험에 참여했다는 것이 한국원자력연구소 장인순 소장의 말이다. 장 소장은 그러나 연구자 보호를 위해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실험은 2000년 초에 했다.

?정부 파장 막기 분주=외교부.통일부 등 관련부처들은 하루 종일 잇따른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정부 관계자는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가면서 최대한 빨리 파장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무엇보다 일부 외신의 오보(誤報)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외교부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한국이 무기급 농축 우라늄을 추출했다거나, 우리 정부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등의 외신보도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한 북한의 반발이 예상됨에 따라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와 만나 "긴급 대책회의 결과 9월 말로 예정된 북핵 6자회담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며 "하지만 당분간 북측의 반응을 예의주시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주요국 반응=워싱턴 포스트.뉴욕 타임스.아사히.요미우리 등 미국.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북한이 이번 사건을 이용하고, 6자 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또 미국 정부는 담담했으나, 일본 정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일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지만 한국은 실험을 자진신고했고, IAEA의 조사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며 "한국의 투명한 신고와 협조는 핵 문제 처리의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할까 우려하면서 유감 의사를 밝혔다.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은 "이번 문제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무성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핵개발을 시도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외교 문제로 삼을 뜻은 없음을 비췄다. 북한과 중국 정부는 일체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

박방주.박신홍 기자,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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