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재’ 기초체력 달리는 한국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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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증시의 기초체력이 바닥났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거래량과 거래대금 모두 확 줄어들면서 조그만 악재 하나에도 지수가 크게 출렁인다. 증시에 기력을 불어넣어 줄 만한 호재도 찾기 어렵다. 지금으로선 4분기 실적에 대한 부담감과 신종 플루라는 복병까지, 불안감을 더하는 재료가 더 두드러진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코스피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3억6552만 주였다. 전달보다 25%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던 올 1월(3억8011만 주)보다도 더 떨어진 연중 최저치다. 하루 거래량이 7억 주가 넘어섰던 4~5월과 비교하면 반 토막이다. 지수가 0.33% 하락한 10월 30일엔 2억7207만 주로 올 1월 23일 이후 가장 적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거래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5조6010억원으로 전달보다 2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김학균 SK증권 투자전략팀장은 “9월까지 강세장을 내다보던 긍정적인 심리가 중립적이고 신중한 시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가 1400선을 돌파한 뒤 한참 동안 게걸음을 하던 올 6월과 비슷하다. 당시에도 거래량과 거래대금 모두 전달보다 30%가량 줄어들어 거래 가뭄에 시달렸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 당시 증시는 7월 중순 이후 기업의 2분기 깜짝 실적이 쏟아진 게 돌파구가 됐었다.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을 예고하면서 지수도 박스권에서 탈출했다. 이에 비해 지금은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실제로 내놔도 증시가 꿈쩍 하지 않는다.

최근 발표되는 기업의 ‘깜짝 실적’은 투자자들에게 기대감을 주기는커녕 ‘이제 정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만 더해주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윤자경 연구원은 “3분기 실적시즌에선 한국 기업의 59%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보일 정도로 선전했다”며 “하지만 4분기 실적에 대해선 시장이 확신 있는 카드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상승장을 이끌었던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은 원화가치 강세와 계절적 영향으로 실적 감소가 예상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보다 16% 줄어드는 걸 비롯해 LG디스플레이(-43%)·LG전자(-56%) 등 대부분 종목의 성적이 3분기만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신종 플루라는 변수도 있다. 지난달부터 신종 플루 확산이 급속히 빨라졌지만 아직까진 일부 업종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확산 속도가 워낙 빨라 자칫 2003년 유행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처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스가 크게 유행했던 2003년 3~5월, 국내 증시는 카드 거품의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17.9% 급락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신종 플루 관련 보고서에서 “현재로선 1분기 정도의 내수 위축이 이어질 수 있는 수준이지만 대유행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뚜렷한 호재는 없고 각종 악재만 증시를 짓누르는 상황이다 보니 당분간 변동성이 큰 박스권 장세가 예상된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단기간 하락폭이 커서 반등 가능성도 있지만 경계심을 놓기 어렵다” 고 조언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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