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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輕車) 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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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속보다는 학력이나 직업, 집, 자동차 등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곤 한다. 오랜 가난의 역사 때문이긴 하겠지만 우리 국민의 소유욕과 과시욕은 유별난 데가 있는 것 같다. 집 한 칸 없어도 큰 차를 고집하고, 집안 기둥뿌리가 흔들려도 기죽지 않으려고 호화결혼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 통념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랄까. 어쨌든 인격보다는 차의 격을 중시하는 겉치레 중시 문화에 반기를 들어보고 싶은 충동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집착해 경차를 구입한 건 아니다. 타고 보니 이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경제적인 이득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기름은 오토바이보다 조금 더 들어가는 수준이고 차량 구입 때 등록세와 취득세가 아예 면제되니 얼마나 큰 혜택인가. 공용주차장과 고속도로 통행료는 일반차량의 절반이면 되고. 한마디로 유지비용이 엄청 적게 드는 것이다. 차가 작으니 주차하기 쉽고, 차 안이 좁으니 손을 뻗으면 안 닿는 곳이 없어 편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감수해야 할 불편도 적지 않다. 때로는 위험이 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과속하는 버스나 대형 트럭은 공포의 대상이다. 심한 강풍을 만날 때도 중형차에 비해서는 흔들림이 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경차라고 해서 교통사고가 더 났다는 보고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이럴 때 나는 바로 바깥 차선으로 나가 속도를 줄여 안전주행을 한다. 트렁크가 작아서 물건을 조금만 실어도 꽉 차고, 골프채가 들어가지 않아 뒷좌석에 클럽을 실어야 하는 불편도 참아야 한다. 

이런 일들은 차를 구입할 때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감수하면 될 일이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황당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호텔에서 근사한 회식 자리가 끝난 후 그런 일이 잦았다. 명색이 대학병원 부원장이라는 사람이 너무 검소한 척한다는 냉소적인 눈길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사람 눈길 끌려고 쇼하는 거 아냐” “거 참 튀는 사람이네”라는 노골적인 핀잔을 들을 때는 참담했다. 어느 때는 “내가 너무 오버하나” 자문해 보기도 했다. 골프장에서는 안내 직원이 “무슨 일이냐”며 차를 막아 낭패를 겪는 일까지 있었으니 세상사 쉬운 일이 없다.

일본에서는 재벌회장도 경차를 탄다는데. 어떤 차량을 타고 다니든 그건 개인의 형편이나 취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당사자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 자기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듯이. 어쨌든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앞으로도 쭉 경차를 탈 생각이다. 4년간 타 보니 편하고 바꿀 만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먼 길을 갈 때는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될 테고. 배기가스가 적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적으므로 녹색기술산업분야에선 ‘輕차’를 ‘敬차’라 한다 하니 이 또한 좋은 일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주는 교육적인 효과도 없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박국양 가천의대길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