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부 난' 발언 소문 육참총장 "너무 황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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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방부가 3일 발칵 뒤집혔다. 현직 육군참모총장이 국방부 문민화에 반발해 고려 시대 무신의 난인 '정중부의 난'을 언급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 때문이다.

◆전말=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은 지난달 31일 계룡대에서 육군 부장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는 남 총장 외에 육참차장.인사참모부장.정보참모부장 등 육본 수뇌부 1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군 안팎에선 "총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남 총장이 회의에서 "왜 정중부의 난이 일어났는지 아는가"라며 청와대의 문민화 방침에 반발했다는 주장이다. 소문이 확산돼 기자들이 취재에 들어가자 국방부는 청와대에 보고했다. 청와대는 기무사에 진위 확인을 지시했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김종민 청와대 대변인)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국방부 역시 당시 참석자를 조사, 그런 발언은 없었다고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일부 신문이 소문으로 돌던 '정중부의 난' 발언설을 보도했다. 윤일영(소장) 육군 인사참모부장은 3일 회의 당시 자신이 빽빽하게 기록한 메모를 들고 나와 부인했다. 일부를 읽어줬다. 군이 내부 회의 메모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윤 부장이 "정중부의 '정'자도 나온 바 없다"며 밝힌 남 총장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문민화의 취지에 맞춰 일을 추진하라. 각군 직능별로 중령.대령 선발 직위가 없어진다. 지금까지 양성한 전문 인력의 활용에서 향후 나타날 문제를 해소할 합리적 대안이 필요하다."

남 총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황당하다. 더는 말을 않겠다"고 했다. 남대연 국방부 공보관은 "국방부는 사실무근의 허위 내용이 유포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원자가 군내에 있다면 색출하겠다는 뜻이다.

◆소동의 배경=소동의 근저에는 문민화에 대한 군내 걱정과 반발이 깔려 있다. 군은 겉으론 "문민화가 시대적 흐름이자 대세"라고 하지만 내부적으론 불안감이 커지는 양상이다. 특히 육군이 그렇다.

국방부 본부의 정책.획득 분야 장교들은 대체로 위관 시절 선발돼 해당 분야 전문가로 키워진 인력들이다. 박사 학위자들과 사관학교 최우수 졸업생도 많다. 육사의 경우 250~300여명의 기수별 졸업생 중 30여명만이 이런 전문 요원으로 양성된다. 이들 '엘리트 요원'은 군 문민화로 조만간 자리를 잃을 수 있다. 군 안팎에서 "당장 이들을 빼면 대체할 민간 인력을 어디서 구하는가""예비역으로 충원한다 해도 전역 후 여러 해가 지난 예비역들이 최신 정보로 무장한 젊은 현역을 능가할지는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군 내부에선 장교 수 감축을 문민화 2탄으로 우려한다. 본부에서 빠져나가는 인력들을 위해 야전에 위인설관(爲人設官)식 자리를 만들 수는 없는 만큼 장교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민화는 지난 5월 신일순 육군 대장의 구속보다 파장이 크다. 당시는 유례 없는 현역 대장의 사법처리였다. 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군내 실무 두뇌의 '물갈이'다. 개개인의 미래도 걸려 있다. 군 내부가 문민화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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