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산책] 여자 역도 '금쪽 은메달' 장미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 장미란이 헤드폰으로 평소 즐겨듣는 성가를 듣고 있다. 이왕이면 책도 들고 사진을 찍자는 제안에 흔쾌히 책을 들고 촬영에 응했다.원주=신동연 기자

아테네 올림픽 여자역도 무제한급(75㎏ 이상급) 은메달리스트 장미란(21)은 요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 각종 행사 때문에 좀 과장하자면 '분'단위로 스케줄을 잡아야 할 지경이다.

지난달 26일 1진으로 귀국한 장미란은 방송사의 토크쇼를 시작으로 나흘간 8개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청와대부터 모교인 원주공고까지 환영행사가 줄을 이었다. 1일에는 원주시에서 카퍼레이드도 했다. 갑작스러운 관심세례가 부담스러운 듯 "익숙하지 않아 적응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고 했다.

한국은 아테네에서 금메달 9개를 땄다. 은메달도 12개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메달리스트인 자신에게 관심이 쏠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아쉬워서 그런가봐요"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인상에서 탕공훙(중국)보다 7.5㎏을 더 든 장미란은 용상에서 172.5㎏을 들었다. 다들 금메달로 알았는데 탕공훙이 한꺼번에 10㎏을 올린 182.5㎏을 들어버렸다. 그는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 아니겠느냐"면서도 "욕심은 끝이 없다. 내 최고기록을 든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세상의 관심은 '역도선수 장미란'보다 '여자 장미란'에 맞춰졌다. 말문을 열기 어려워 "고교 때 교복 입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치마 입었느냐고 물으려는 거죠"라고 받아쳤다. 그러더니 "예전엔 '여자인데 역도를 하느냐' '여자인데 살 찌워도 되나' 등의 질문이 듣기 싫었는데 요즘은 괜찮다"고 했다. 물론 치마 교복은 입었단다.

장미란이 처음 역도 바벨을 잡은 건 원주 상지여중 2학년 때였다. 원주시 역도연맹 전무를 지낸 아버지(장호철.52)가 또래에 비해 골격이 좋은 그를 김해광 원주시청 역도감독에게 데려갔다. 여자가 역도 한다는 게 너무 창피해 하루 만에 도망쳤다. 1년 뒤 아버지가 한번 더 데리고 갔지만 또 도망쳤다. 그런데 역도부가 있는 원주공고에 입학하자 도망갈 수도 없게 됐다.

역도 입문 후 생활은 순탄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위기나 역경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거 없는데…"라고 한다. 그래도 찾아보라고 다그치자 "그러면 지난해 경기하다 허리 다친 걸 위기라고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또 "별거 아니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꾸며진 영웅'이 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아테네행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한체육회가 꼽은 '메달후보'였던 장미란에게 비즈니스 석이 배정됐다. 그런데 자기보다 20여㎏이나 더 무거운 남자역도 무제한급의 안용권이 이코노미 석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안용권과 몇 시간씩 돌아가며 비즈니스 석에 앉았다. 그는 "이 얘기 절대 쓰면 안 된다. 착한 척하는 걸로 보이는 건 싫다"고 했다.

귀국 후 탤런트 권상우와 만난 게 화제가 됐다. 역도연맹에서 장미란이 메달을 딸 경우 소원을 들어주기로 해 성사된 만남으로 알려졌다. 그는 "권상우를 좋아하긴 하지만 소원이라면 좀 그렇지 않으냐"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올 초 태릉선수촌 역도훈련장을 찾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여자선수들이 원하는 게 뭔가"라고 물었다. 당시 권상우가 주연한 드라마가 뜨고 있었고, 여자선수들이 일제히 "권상우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던 게 '장미란의 소원'이 된 것이다.

바벨을 들고 난 뒤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장미란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태릉에서도 탁구의 석은미.이은실.김경아, 양궁의 윤미진.박성현 등 함께 교회 다니는 선수들과 친하다. 성가를 즐겨듣고 가끔 원주 집에 들를 때면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성가도 부른다. 그래서 "취미가 피아노 연주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취미는 인터넷 맞고(고스톱)인데요."

원주=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