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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관행 탈피해 내적 개혁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신문은 권력을 감시.견제하면서 공익을 증진하는 막중한 사회적 역할을 한다.

동시에 새로운 소식과 정보를 적절하게 선택, 정기적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정한 대가를 받는 영리적 목적을 갖고 있다.

많은 신문들이 증시에 상장돼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된 미국에선 이같은 신문의 이중성을 누구나 쉽게 인식하고 수용하며, 신문기업의 인수.합병 조차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문의 기업활동이 투명하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독자들이 신문의 이중적 정체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베니스의 상인들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편지로 써서 돈을 받고 팔기 시작한 것이나, 19세기 중반 미국인들이 광고유치로 신문가격을 5분의1로 대폭 낮추면서 대중신문을 상품화한 것을 보면, 신문은 인간의 창의성과 진취성이 만들어낸 뛰어난 문화상품임에 틀림없다.

또 미디어 경제학자들은 미디어의 소비지출은 치약.비누와 같은 생필품의 소비패턴과 같은 항상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는 이미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필수품처럼 사람들의 생활 속에 통합됐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시작을 20여일 앞둔 이 시점에서 나는 우리 나라 신문사들이나 독자들 모두 신문의 이중성을 진실로 받아들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신문의 공익적 가치가 계속 증진돼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제 신문의 상품적 가치와 생필품적인 속성에 대한 현실적 인식도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신문사들은 이제 진지한 자기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그동안 우리 나라 신문사들이 독자들을 신문이라는 상품을 선별 구매, 소비하는 능동적인 소비자들로 인식하기보다 그냥 자신들이 가져다주는 정보를 고맙게 읽어주는 수동적인 독자들로 인식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독자 위에 군림했을 경우 다른 상품이라면 벌써 시장에서 퇴출당했을 것이지만, 언론의 공익적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 구세대 독자들 덕분에 신문은 아직까지 불안하게나마 시장에 남아있는 것이다.

개혁성이 뛰어난 미국의 신문산업에서는 ▶주중 구독▶일요판 구독▶간편한 맞춤 신문 등 신문별로 생활습관에 맞게 독자가 세분화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지하철.버스 등의 열악한 대중교통,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간낭비, 장시간 노동과 휴가 부족 등으로 제때 신문을 못읽는 독자들이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토.일요일의 불안한 정보공백을 독자들이 아무리 불평해도 신문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내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우리 나라 신문들은 독자들보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지적 욕구와 지적 수준에 맞게 만든다.

특히 어려운 경제면과 국제면, 수준높은 문화면은 사실 많은 독자들을 신문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 중앙일보가 '독자와 함께 만드는 국제면' 을 기획한 것은 좋은 출발로 보인다.

'Money & Life' 도 독자가 쉽게 생활경제를 접할 수 있도록 시도한 것 같으나, 증권.부동산 등 투기과열에 언론이 앞장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평.음악평.학술 사조(思潮)분석(예를 들면 '지식인 판도가 변하고 있다' 등) 기사들은 식자층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상대적으로 많은 일반 독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조정이 필요하다.

정보적 가치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서평.학술논평.사조 분석과 같은 수준높은 기사들은 뉴욕 타임스의 일요판 타블로이드 섹션처럼 주말(토요일)에 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21세기에 전개될 치열한 매체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신문사들은 보다 진지하게 독자들의 생활 속에 파고들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관행과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내적 개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최선열(崔善烈)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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