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코리아 워처'들의 손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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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전문가를 두고 일본에서는 코리아워처(Korea Watcher)라고들 한다.

뭘 지켜보고 있다는 건가.

따지고 보면 결코 유쾌한 용어가 아니다.

아메리카워처라는 말도 들어본 일이 없다.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조어다.

다분히 경계적 의미나 좋지 않은 선입견이 깔려 있는 용어다.

어쨌든 코리아워처들 사이에는 한국 학자들 뺨칠 정도로 한국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한국을 마치 사고뭉치 대하듯 직업적으로 감시하는 사시적(斜視的) 전문가들도 없지 않다.

어느 쪽이 됐든 간에 한국에 대해 '빠끔이' 들이다.

이들은 공개된 정보보다는 비밀스런 정보, 다소 신뢰가 떨어지더라도 따끈따끈한 소문 쪽에 더 관심을 쏟는다.

증권시장에서 나도는 소문까지도 이들에겐 소중한 정보로 치부된다.

청와대의 드러난 권력구조뿐 아니라 뒷문 출입하는 실세가 누구냐에 이르기까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엉터리도 더러 있지만 밉든 곱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코리아워처들이다.

손바람 한번으로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제여론 형성기지 역할을 한다.

도쿄(東京)에서 일단 판단이 서면 바로 전세계로 확대재생산되는 코스를 밟는다.

미국도 유럽도 도쿄 판단에 의존해 한국의 변화를 읽어나간다.

일본 사람 판단에만 의존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본에서 보는 시각으로 한국을 저울질한다는 말이다.

최근 한국을 놓고 벌어진 굵직굵직한 딜의 결정도 거의가 리얼타임으로 도쿄에서 이뤄졌었다.

계약서 사인이야 뉴욕이나 런던에서 했을지 몰라도 그것의 실질적 결정은 죄다 도쿄에 진을 치고 있는 아시아 책임자 손을 거친 것이다.

이래서 도쿄의 코쟁이들은 정말 자존심 상할 정도로 콧대가 높다.

1시간30분밖에 안걸리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 갔다 오는 것이 무슨 오지(奧地)출장이나 가는 것처럼 여긴다.

중요한 정보는 도쿄에서 챙기면 그만이고 본국보고도 도쿄가 더 편하다는 식이다.

서울에 가 한국사람들한테 속는 것보단 차라리 도쿄의 코리아워처 말을 듣는 편이 더 실속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한국에 별도 사무소를 냈던 기업들조차 최근 경제위기로 손털고 도쿄 사령탑에 다시 통폐합한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의 값은 더 추락하고 도쿄의 값은 더 올라간 셈이다.

언론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아직도 서울특파원을 안둔 채 도쿄특파원이 서울까지 커버한다.

"한국쯤이야 별도 특파원을 둘 필요가 없다" 는 건방과 오만에 부아가 치민들 달리 어쩌겠나.

결국 일본이든 미국이든, 기업이든 은행이든 간에 외부에서 한국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국제조망대는 역시 도쿄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미국에서 한반도를 연구하는 박사학위 논문학도들마저 인터뷰나 자료수집을 위해 도쿄로 날아온다.

한국을 연구하는데 서울보다 도쿄가 더 낫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결국 한국에 관한 좋은 정보든 나쁜 정보든, 사실이든 소문이든 간에 세계로 퍼져나가는 출발지요, 확대재생산지의 시작이 바로 도쿄라는 이야기다.

일본의 코리아워처들만이 아니다.

뉴욕과 런던의 일류 전문가들도 죄다 도쿄에서 턱을 괴고 앉아 한국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가을부터 대우의 부실을 감추기 위해 별 수를 다 썼지만 이곳의 빠끔이들은 오래 전부터 대우와의 거래를 끊기 시작했었다.

최근 2년간 한국 장사에서 떼돈을 벌게 한 결정도 거의가 도쿄에서 이뤄졌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많은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손 한번 잡아주고 수억달러를 챙겼는가 하면, 웃돈까지 얹어 기업들을 통째로 훑어간 국제적 재간꾼들이 모두 도쿄에 앉아 있다.

그런데도 이런 도쿄를 우린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대외신용평가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곳 도쿄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가 말이다.

최근 도쿄에서 열린 현대그룹 기업설명회의 성공이 좋은 예다.

현대의 핵심인물들이 직접 나서 유창한 영어로 척척 받아넘기자 그동안의 악성루머들이 사라져버렸다.

진작 그럴 노릇이지. 창사 이래로 도쿄에서의 이런 행사가 최초라고 하니 무슨 말을 더 할까. 도쿄는 일본의 수도만이 아니다.

한국을 지켜보는 세계의 조망대다.

정부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코앞의 파수꾼들한테부터 잘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 아닌가.

공연히 돈 들이고 멀리 다닐 것 없이.

이장규 일본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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