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사형제도 폐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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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형제도 폐지론을 선구적으로 제창한 사람은 18세기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형법학자인 체사레 베카리아였다.

그는 1764년에 간행한 저서 '범죄와 형벌' 에서 '사회계약론' 에 따라 국민은 국가에 대해 가급적 적은 권리만을 위임하고 있으므로 국가가 국민을 사형에 처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그후 학문적이나 계몽주의적 입장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나 사형제도를 없애거나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수를 줄이는 데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수를 늘리거나 사형 당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더욱 늘린 나라들이 많았다.

영국이 좋은 예다.

19세기 초에 이르러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수는 무려 2백30가지로 늘었다.

이유없이 나무를 베거나 소매치기, 심지어 집시와 사귀어도 사형선고를 받았다.

1801년에는 스푼 한 개를 훔친 13세 소년이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10세가 안된 어린이들이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 처형된 예도 많았다.

나치 독舅?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위해 털옷을 훔친 네 아이의 어머니, 닭 두마리를 훔친 사내, 담배 6갑을 훔친 우편배달원 등이 줄줄이 처형됐다.

이런 사례들은 물론 형법상의 사형이라기보다 '비이성적인 살인' 이라 해야 마땅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제기되는 사형제 폐지론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권력의 횡포를 막아보자는 데만 목표를 둔 것은 아니다.

인명(人命)을 부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의 이름으로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 소외계층에만 적용되는 등 불공평하다는 것, 오판(誤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등이 오늘날 사형제 폐지론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항하는 사형제 존치론도 만만치 않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식의 '응보의 법도' 에서부터 극악무도한 범인들은 인간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돼야 한다는 감정논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납세자에게 과대한 부담을 주는 장기 구금보다 '헐값' 에 끝낼 수 있다는 논리가 제기되기도 한다.

1백5개국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96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심리에서 다수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사형선고에 신중을 기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됐을 때는 폐지해야 한다" 는 단서를 내놓았다.

엊그제 여야 국회의원 92명이 사형제 폐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헌재의 3년 전 '단서' 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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