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도 예산도 춤추는 정부 논리…경제정책 '한입 두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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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중 금리가 내려가는데 이자소득세를 내릴 의향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그럼,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소득세를 올려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감세(減稅)정책을 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전에도 감세가 경기를 살리는 데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3일 뒤인 지난달 30일 열린우리당은 근로자.자영업자의 근로소득세와 이자소득세를 낮추는 경기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이 이 부총리에게 "당정협의가 이뤄졌는가"라고 묻자 그는 "아무 말 않겠다"고만 했다. 그리고 이 부총리는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저녁 출국했다.

이틀 뒤인 1일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30일 열린우리당이 발표한 내용대로 세금을 내리기로 확정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헷갈린다. 경제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경제부총리가 밝힌 정책 방향이 불과 며칠 만에 뒤집힌다. 정부보다 열린우리당이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쥔 듯한 양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정부와 여당이 협의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제와 예산 같은 정부의 주요 정책수단이 정치논리에 휘둘린다는 우려가 크다.

◆ 헷갈리는 정책=기획예산처는 당초 내년에 적자국채를 3조원어치만 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일 '2005년 예산(안) 편성방향'을 발표하면서 적자국채 규모를 6조~7조원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평소 균형 재정을 강조하던 기획예산처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내년에 감세정책으로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열린우리당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2조5000억원 확대해 달라고 요구해 적자국채 규모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이 정도 적자국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도 안 돼 균형 재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재경부가 2일 밝힌 골프장.경마장.경륜장.카지노.유흥업소 등에 대한 특소세(국세)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방안도 기존 입장과 정반대다. 그동안 재경부는 국가 세입 재원을 지방으로 이전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했었다.

하지만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은 이날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특소세의 지방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국정철학인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에 밀려 재경부의 기존 논리는 온데간데없어졌다.

◆ 원칙이 필요하다=이처럼 정책이 왔다갔다한 데 대해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책은 경제 상황과 실정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는 것으로 비치고, 결과적으로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는 점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정책은 시장 참여자들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며칠 사이에 정책이 뒤바뀌면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지휘체계에 혼선이 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여당은 최근 내놓은 경기 활성화 대책 보도자료에서 '적극적으로 행정부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거시정책을 책임지는 정부를 오히려 이끌겠다는 얘기다.

김종윤.장세정.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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