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생색내기용 공장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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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정부는 '신수도권 발전 및 혁신도시 건설 방안'을 발표했다.

"수도 이전과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180~200개)의 지방 이전을 전제로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동안 정부 관계자들은 "수도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따른 수도권 공동화 우려를 불식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 같은 발언은 수도권에 뭔가 획기적인 반대급부를 줄 것이란 기대를 낳았다. 이날 발표에 관심이 쏠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정부가 마련한 대책들은 관계부처 협의도 마무리되지 않은 설익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수도권 중장기 발전정책은 이미 과거 정권 때 다 나온 것을 재탕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대책은 대기업의 첨단업종에 한해 수도권 내 공장 신설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1994년 수도권 공장총량제가 도입된 뒤 10년 넘게 수도권에서의 공장 신설을 꽁꽁 묶어왔던 규제를 처음으로 풀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포장에 비해 알맹이가 없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첨단업종이 입주할 만한 공장 부지가 턱없이 적다.

예컨대 대기업 공장이 주로 입주하는 산업단지 계획입지 면적은 2차 수도권 정비계획에 따라 1997년부터 2011년까지 1320만평(44㎢)으로 제한됐고 이미 지난해 말까지 874만평이 소진됐다. 남아 있는 446만평 중 올 초부터 2006년까지 배정된 면적은 154만평뿐이다. 공장 한두개만 세우면 금세 바닥날 판이다. 공장 신설을 허용한다면서 수도권의 개별 공장총량과 산업단지 계획입지 총 면적은 그대로 묶겠다고 한 데서 오는 난센스다. 공장을 지으라면서 땅은 쓰지 못하게 하면 어쩌란 말인가.

한쪽의 규제는 풀면서 다른 쪽 규제는 여전히 두는 바람에 효과가 실종돼 버렸다.

이번 대책을 두고 "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급조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세정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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