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찾은 핸드볼 영웅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임영철 감독.

▶ 귀국 다음날 곧바로 새 팀에서 훈련에 돌입한 오영란(左)과 이상은이 아테네 올림픽을 회상하며 웃고 있다.[인천=강정현 기자]

지난 1일 인천시 동구 송현초등학교 체육관. 4일 공식 창단하는 ㈜효명종합건설 핸드볼팀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한쪽에선 선화여고 선수들이, 좁은 단상 위에서는 '언니'들에게 자리를 내준 송현초등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좁은 체육관에서 3개 팀 선수들이 바글거렸다. 효명건설은 원래 인천실내체육관에서 훈련을 해왔지만 이날 시 주최 행사 때문에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코트야 어쨌든 선수들은 열심히 달리고 힘껏 던졌다. 신나게 뛰고 또 뛰는 이들 틈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 같은 은메달을 따온 '아줌마 골키퍼' 오영란(32)과 주전 공격수 이상은(29). 이들에게 "안 뛸래" "패스 안해!"라며 호통을 치고 있는 이는 대표팀 사령탑 임영철(44)감독이다.

전날 귀국해 바로 이튿날부터 훈련을 시작한 이들은 여섯시간의 시차 때문에 피곤할 듯도 한데 대충 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효명건설은 오는 9일부터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2004 코리안리그 전국실업핸드볼대회'에 출전한다. 다시 뭉친 '아테네 3인방'의 처녀 출전 대회다.

"핸드볼만 맘껏 할 수 있으면 상관없어요. 대신 대회에 관중이 많이 와주시면 좋겠어요."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형편이 여전히 옹색하다는 첫 인사를 임 감독은 고개까지 저어 가며 이렇게 받았다.

1998년 팀(종근당)이 해체되는 바람에 5년여를 '반 백수생활'을 했던 그이기에 다시 실업팀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힘이 솟는 듯했다. 아직 선수가 9명뿐이어서 좋은 성적을 내긴 힘들 것 같지만 벌써 임 감독의 마음은 분주하다.

"연말에 고졸 신인들을 스카우트할 겁니다. 힘들겠지만 2~3년 안에 강한 팀을 만들어 봐야지요. 참! 리그가 좀 활성화하면 다른 팀들과 의논해 외국인 선수들도 데려오고 싶어요. 북유럽 선수들 중에서요. 관중을 끄는 효과도 있을 테고…."

쉬지도 못하고 훈련을 했지만 오영란과 이상은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느새 훈련을 마친 꼬마 선수들이 쪼르르 달려와 사인을 해달라고 조르더니, 올림픽 경기를 보고 감동받았다며 인천시민 두명도 연습장을 찾아와 알은체를 했다. 오영란은 노르웨이 리그에서 뛰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서 뛰기 위해 귀국하는 바람에 실업자가 됐다. 덴마크에서 뛰다 지난해 초 귀국해 알리안츠생명팀과 계약했던 이상은도 팀이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올 초 핸드볼 큰잔치를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다시 뛸 팀이 생긴 것만도 좋은데, 올림픽 은메달 덕분에 '인기 스타'까지 됐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두 시간 반 훈련을 마친 뒤 "늦으면 밥 없다. 빨리 가자"며 짐을 챙기는 이들에게 아테네에서 재미있었던 일을 물었다. "죽어라고 훈련하고 지겹게 상대팀 경기 비디오만 봤어요. 유적지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구경도 못했고…. 그래도 좋았어요. 열심히 경기했으니까. 아! 감독님이 김치찌개 끓여줬어요. 맛이 있었는데…음…약간 느끼했죠."(웃음)

인천=남궁욱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