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나들이] 상다리 휘어지겠네, 쉴 틈 없는 젓가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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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에 앉자마자 음식이 오르기 시작한다. 잠깐 사이에 대감댁 잔칫상 같은 한상 차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감탄사가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쇠고기 육회에 문어 초회까지 있네. 돼지고기 수육.가오리무침.버섯탕수라. 상당히 고급스러운 상차림이군. 어라 그런데 이건 뭔가, 포삭하게 찐 밤감자 아닌가. 이게 얼마만인가. 그리고 이건, 배추전 아니야. 서울에선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것인데…'. 젓가락을 들고 어디부터 가야할지 머릿속이 분주하다.

일단 밤감자부터 젓가락으로 푹 찔렀다. 쉽게 들어가는 걸 보니 속까지 포삭하게 익은 모양이다. 껍질을 벗기니 속살이 보푸라기처럼 일어나 입에 닿은 촉감이 부드럽고 달콤하다. 다음은 배추전이다. 두툼하긴 하지만 가로.세로 5㎝ 정사각형으로 차분하게 썰었다. 양념장에 찍어 입에 넣는 순간 배춧잎의 풋풋하고 상큼한 기운이 입안 가득 돈다.

이런 상에 반주가 빠질 수 있나. 뒤늦게나마 소주 한 잔을 들이켠다. 이제부터는 차분히 이것저것 한 젓가락씩 맛보며 홀짝홀짝 목젖을 적신다. 황.백 지단까지 올린 메밀묵 무침, 부드러운 돼지고기 수육, 싱싱하고 새콤한 가오리무침, 상큼한 양상추 샐러드도 하나둘 접시 바닥을 드러낸다.

"곧 식사를 올리겠습니다"란 종업원의 말에 '공기밥에 국이나 찌개 정도 더 올리겠지'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먹다 남은 상을 완전히 치우고 다시 상을 보기 시작한다. "우와!" 또다시 감탄사가 나왔다.

'호두조림에 김장아찌가 있네. 가죽나물.고사리나물.박나물.참나물.가지나물.깻잎순나물.엄나무순나물, 도대체 나물만 몇 가지야. 부추를 콩가루를 무쳐 찐 것도 있네. 백김치.배추김치도 먹음직스럽군'. 한동안 멍하게 감동하고 있는 사이에 꽃게무침과 안동 간고등어구이까지 밥상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기장밥에 호박잎국, 그리고 된장찌개가 자리하자 밥상의 어느 구석자리도 빈틈이 없다. 음식 하나하나 맛을 보지 않아도 정갈하게 담은 모양새로 밥상에 앉은 사람들을 압도한다. 밥그릇을 비우고 나니 붉은 빛깔의 안동 식혜와 과일이 후식으로 나왔다.

"이게 얼마짜리 한정식입니까?"

"일인분에 1만원입니다."

경상북도 안동에 취재 갔다가 그곳에 자리를 잡은 친구랑 저녁 식사했던 안동시청 근처의 '부숙한정식(054-855-8898)'집 얘기다. 1만5000원.2만원.3만원 메뉴도 있단다.

'그렇다면 과연 3만원 상차림은 어떨까.'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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