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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뷰]새로운 WTO협정 필요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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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쓸모없는 회의가 있다면, 이번주 시애틀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회담일 것이다. 이번 회의의 명시적 목표는 새로운 무역질서, 즉 뉴라운드를 출범시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협정은 앞으로 3~8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직전의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기까지 7년6개월이 걸렸다).

그렇지만 세계무역은 반드시 새로운 협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역은 오랫동안 거대한 힘이 돼왔다.

1950년 이후 세계의 경제는 6배나 성장하며 약 30조달러의 산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무역은 14배나 성장하며 5조4천억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소득증대와 식생활 개선 및 평균수명 연장 등을 통해 득을 보아왔다.

무역은 새로운 기술과 경영기법을 확산시켜 후진국의 산업근대화를 이끌었다. 무역을 통해 얻는 이점은 손실보다 많다.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개방정책을 펼친 개발도상국은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 비해 3배 이상 발전했다.

때때로 이들 개도국의 발전은 선진국의 손실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개도국들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값싼 제품으로 이득을 챙기는 동안 선진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것이다. 철강 등 몇몇 산업에서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기는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섬유.의류 등 개도국들의 주력산업에 재고용됐다. 이처럼 무역이 미국의 일자리를 메마르게 한다는 생각은 현실과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

미국의 실업률은 해외요인보다도 국내요인에 주로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경기호황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고 달러 가치가 상승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아야한다.

미국도 무역으로 얻는 것이 많다. 싼 값에 수입품을 사들일 수 있고 컴퓨터 같은 첨단기술 상품을 외국에 판매할 수 있다. 상품의 질은 향상되고 인플레를 진정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역이 이처럼 좋은 것이라면 새로운 세계무역 협정이 만들어진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과거엔 무역장벽과 국내의 사회.경제적 정책간 구분이 명확했다. 무역장벽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은 관세.수입할당 등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구분은 흐려지고 있다. 핵심은 무역 이슈들이 점차 국내 분야에 영향을 끼치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의 노동조합과 환경주의자들은 WTO가 보다 인간적인 노동환경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국은 WTO에 경제적 주권을 일부 양도할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사회적 주권에 대해선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역자유화는 새로운 협정이 없더라도 진행될 수 있다. 무역이 가져다주는 혜택은 너무나 명확해 가난한 나라들도 WTO 체제 안에 편입되고싶어 한다.

무역자유화를 이끄는 또다른 원동력은 활발한 해외투자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인수.합병(M&A)을 포함, 국가간 투자액은 6천4백40억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해외투자는 기술전파와 직업창출에 기여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건전한 금융시스템과 보다 편리한 통신 인프라를 원한다.

그들은 또한 국내기업들에만 편의를 주는 규정을 원하지도 않는다. 부국이든 빈국이든 각국은 경쟁을 막고 외국투자를 방해하는 규칙을 자발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WTO협정을 통해 위로부터 부과되는 강제적 변화보다는 이같은 자발적 규제 폐지가 정치적으로 더 건전하다.

시애틀 회의는 좋게 말하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행사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시간낭비일 수도 있다.

정리〓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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