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방송법] TV, 정부입김 벗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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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5년 동안 표류했던 통합방송법이 29일 국회 문화관광위의 막바지 조율에서 그동안 여야간 첨예한 쟁점이었던 신설 방송위원회 구성에 대해 의견접근을 보여 법 제정의 최대 난관은 벗어났다.

방송위원 구성에서 한나라당은 대통령과 국회 추천인사 각각 3명, 국회 문화관광위가 추천한 시청자 대표 3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되는 공동여당안을 수용했다. 대신 문화관광위가 2배수로 추천한다는 여당 원안을 수정, 시청자 대표 3명을 단수로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이는 만약 시청자 대표를 2배수로 추천할 경우 대통령이 여권에 가까운 사람만을 임명해 방송위원회가 정부.여당측 관련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에 대해 야당이 이의를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또한 국회가 추천하는 3명도 교섭단체 대표위원과 협의, 국회의장이 3인을 추천하도록 합의해 여당의 일방적 인선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방송위원 9명 가운데 위원장.부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4명 중 1명을 야당에 배정해야 한다고 고暉?반면 여당은 상임위원 1명을 야당에 돌린다는 규정을 명문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여야간에 끝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측은 야당이 끝까지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표결처리를 통해서도 이번 상임위에서 통합방송법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어서 지난 5년 동안 여야간 입장차로 질질 끌었던 통합방송법의 회기 내 통과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통합방송법이 통과되면 국내 방송계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2000년대 한국 방송의 뼈대를 만들어갈 주요 항목이 망라됐기 대문이다. 방송 전문가들은 새 통합방송법을 두 가지 기준에서 주목하고 있다.

첫째,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맞게 지금까지 따로 운영되던 지상파.케이블.중계유선 방송 등을 한데 묶어 방송정책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법이 통과풔?즉시 위성방송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위성을 3개나 쏘아 올리고도 관계법 미비로 갈팡질팡해온 위성방송이 제자리를 찾게 될 전망이다.

또한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가 각각 관장했던 케이블TV와 중계유선 방송을 신설 방송위원회가 관리하게 돼 위성방송을 포함한 다채널 상업방송이 만개할 발판이 마련됐다.

둘째, 방송의 정치적 독립 보장 부분이다. 사실상 이번 통합방송법의 핵심은 종종 역대 정권의 홍보창구로 악용됐던 방송을 권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체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단순 심의기능만 갖고 있는 현행 방송위원회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다. 문화관광부에 있던 방송정책권을 신설 방송위원회로 이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신설 방송위원회는 앞으로 방송운영.편성정책, 방송영상진흥정책, 방송기술정책 등을 도맡게 된다.

반면 당초 문화관광부와 '협의' 하도록 돼 있던 방송영상진흥 정책권을 이번 법안에선 '합의' 하도록 수정해 행정부에서 방송을 독립시킨다는 입법 취지가 퇴색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 29일 여야는 당초 신설 방송위가 규칙을 제정해 만들기로 돼 있던 방송위 사무처 구성을 대통령령으로 구성하기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져 방송 관련 시민단체나 방송노조들의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통합방송법 제정을 서두르는 것은 15대 국회의 마지막 임기인 이번에도 처리하지 못하면 공영방송 위상 정립.케이블 정책 일원화.위성방송 정상화 등의 산적한 현안이 그대로 남아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에는 방송위원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밥그릇 싸움' 으로 비친 방송법 논쟁을 더 이상 질질 끌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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