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총장을 수사하다니…" 고개떨군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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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검사를 하면서 이런 꼴은 정말 안 겪어야 하는데…. " 28일 지난 6월까지 총장으로 모셨던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 착수를 발표하던 이종왕(李鍾旺)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의 표정은 시종 어두웠다.

전직 총장에 대한 검찰 조사는 93년 초원 복집 사건 때의 김기춘(金淇春)전 총장에 이어 두번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부터 27일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 는 지시가 내려온 뒤 검찰은 이날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보냈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예정됐던 제주지검 순시 일정을 취소한 뒤 오전 10시쯤 곧바로 긴급 대검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같은 시각. 대검 중수부와 함께 사건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는 서울지검 3차장 및 산하의 특수부장들도 일제히 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간부회의 한 참석자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 회의가 진행되던 도중 김정길(金正吉)법무부장관으로부터 정식 수사지시가 내려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침통해졌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회의석상에선 오랫동안 검찰 선.후배로 일해 왔던 두 사람과의 인간적 교분을 거론하며 '차라리 누군가가 (이들을) 고발해주면 좋겠다' 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 전했다.

사직동팀 문건을 박주선 비서관에게 요구한 뒤 사방에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金전총장에 대해선 "조직의 총수였던 분이 어떻게 이런 해악을 미칠 수가 있느냐" 며 분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관계자들은 소개했다.

검찰은 회의에서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고 온나라가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손놓고 있을 수 없다" 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며, 朴총장도 "문서 유출은 국가기강의 문제인 만큼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뇌부는 수사를 대검과 서울지검 중 어디에서 담당할지도 의논했다. 서울지검은 옷 로비 사건을 미진하게 수사했다가 특검 수사를 초래한 상황 등을 고려, 대검이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결국 검찰총장이 직접 사건을 관장한다는 차원에서 대검에서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검찰은 또 金전총장을 상관으로 모신 적이 없는 검사로 수사팀 진용을 갖추기로 했다.

한편 대검 중수부 관계자들은 전직 중수부장과 전직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중수부로 소환해야 하는 입장 때문에 크게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날 저녁 이종왕 수사기획관 등 수사팀은 극비리에 모여 金전총장과 朴전비서관, 최종보고서를 폭로한 박시언 신동아그룹 고문 등의 소환 일정을 잡는 등 구체적인 수사계획을 수립하며 '폭풍 전야' 를 보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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