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 실장 국회 예결위 나와 '고된 신고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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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취임 이틀째를 맞은 한광옥(韓光玉)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국회 예결위에 나와 호된 신고식 속에 자신의 스타일을 선보였다. 청와대 예산심의를 위한 국회출석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韓실장의 대통령보좌 철학을 따져 물으며 청와대의 총선중립을 거듭 촉구했다.

이규택(李揆澤).김문수(金文洙)의원 등은 "실장 취임을 축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훌륭했던 인품이 전임 실장처럼 망가뜨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며 뼈있는 인사말을 건넸다.

韓실장은 "대통령의 뜻이 정확히 국민과 의원들에게 알려지고 민의가 대통령에게 굴절없이 전달되도록 하겠다" 는 '가교론' 으로 취임인사를 대신했다.

4선의원 출신인 그는 "의회정치를 통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국회의 권위를 존중하겠다" 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나라당측은 박주선(朴柱宣)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옷로비 사건 개입문제와 청와대의 총선개입 의혹 등을 집중 거론했다.

韓실장은 유야무야 넘어가기보다 정면돌파 답변을 택했다. 향후 옷로비사건 처리에 대해 韓실장은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하며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져야 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韓실장은 "국회에 나오기 전 朴비서관이 찾아와 '대통령에게 더 이상 부담이 될 수 없다' 며 사의를 표명했다" 고 소개했다.

당시에는 朴비서관 사퇴사실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의 발언은 즉각 정치권에 퍼져 나갔다. 韓실장은 朴비서관 사퇴를 미리 국회에 설명, 예우를 해준 모양을 취한 셈이 됐다.

청와대측을 곤혹스럽게 만든 특별검사에 대해서도 그는 "수사를 잘 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특검팀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사태를 원치 않는다는 청와대측 의지를 읽게 했다.

야당측에서 제기한 청와대의 총선 개입의혹에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부정선거를 않도?하겠다" "청와대의 선거용 여론조사는 있을 수 없다" 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기구가 비대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불필요한 기구가 있다면 조사해 축소토록 하겠다" 고 답했다. 서슬 퍼렇던 야당측 공세도 韓실장의 답변이 계속되면서 점차 누그러졌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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