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나의 송사] 7.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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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홍난파 선생님. 20세기에 작별을 고하는 언어를 펼쳐야 될 이 자리에, 왜 그런지 마르고 갸름한 당신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냥,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들이 좀 있어서요. 1930년대에 재즈라는 신흥 대중음악 장르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분이 당신이었죠. 어느 SP 음반으로 당신의 '캄보' 가 연주한 재즈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리가 훌륭했었어요. 어떨 땐 SP판이 더 자연음을 자연스럽게 재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지금? 지금은 이미 CD의 시대를 넘어 DVD(디지털 비디오 디스크)의 시대로 가고 있죠. 당신은 아마 디지털화된 소리가 어떤 건지 모를 거예요. 잡음이 없어요. 또, 그대로 복제가 가능해요. 그래서 똑같은 얼굴을 한 수많은 소리들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시대랍니다.

그게 요즘 시대의 음악을 규정하고 있어요. 이른바 테크노죠. 미래의, 그리고 현재의 대중음악의 기본 어법이 바로 그겁니다.

테크노 들어보셨어요□ 반복과 일탈의 음악이죠. 계속해서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말하자면 우리의 패턴화된 일상을 재현하고, 거기에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을 끼우고, 그럼으로써 그 패턴.소음의 장막이 둘러쳐진 소리의 환경 속에서 어떤 유목적이고 일탈적인 체험을 하는 게 목표죠. 우리나라 가수들도 꽤 테크노들을 해요.

사실상 대중음악에 관한 한 매체의 진보가 음악의 진보를 선도한 게 20세기의 대중음악사예요. 그쵸? 선생님이 처음 재즈를 어떻게 접하셨을까 궁금한데, 만일 음반이라는 게 없었다면 당신도 재즈를 제대로 알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도 매체의 진보에 영향을 받으신 거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SP 음반으로 들으셨든 직접 들으셨든 그 둘 모두, 일본 너머 태평양 건너의 나라에서 왔으니까, 그 기원은 마찬가지죠. 멀리서 온 음악. 맞죠□ 그런 면에서는 지금 저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멀리서 온 음악' 을 듣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레프트필드(Leftfield)라는 영국 테크노 밴드의 음악을 틀어놓고 있습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아프리카 쇼크' 라는 노래인데, 이 노랜 또 영국 사람이 하는 것치고는 아프리카의 민속적인 요소가 많네요. 그렇게 많이들 섞여 있어요. 요샌 섞이는 게 기본이죠. 섞이고 또 섞여서 섞임 속에서 새로운 거점이 생기거든요. 어떤 면에선 바람직한 거 같애요. 그 새로운 소리의 거점에 귀를 기울이는 작은 공동체의 소리,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개별적인 소리니까요. 그 소리들이 전체에 영향을 주고 전체에게 인기를 끌기도 한답니다.

여하튼, 저는 지금 멀리서 온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랬겠죠. 구라파에서 온 음악을 들었을 거구, 일본의 식민지였으니까 일본에서 온 음악, 뽕짝 풍의 음악도 들었을 거구, 또 재즈도 들었으니. 우리 귀는 그렇게 멀리서 온 음악으로 길들여져 있어요. 제가 요새 많이 생각하는 건 그거예요.

어째서 나는 팝을 듣고 있을까, 하는 거요. 워낙 인터넷이라는 것 때문에(인터넷이라는 게 있어요)소리들의 '나다님' 이 활발하니까 뭐 팝을 듣는 건 당연하다고 치자, 싶지만, 내가 어떻게 그 어법을(내깐에는)그렇게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냐는 거죠.

우리 음악의 20세기는 '남의 음악을 들은 역사'일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도 들어도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 세련된 녹음의 외국 음악들을 하루 종일 듣다가 무심코 음반을 바꿔 산울림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그 때 이상한 설움이 북받치는 걸 느낀 적이 있습니다.

아 이건, 이 '거칠고 약간은 서툰' 사운드는 내가 무슨 소리인지 안다, 하는 느낌 말이죠. 산울림 아세요? 70년대 중반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여 지금도 가끔씩 음악을 하는 우리 록 밴드예요. 구어체죠. 구어체를 록의 멜로디와 접목시키는데 성공한 훌륭한 밴드죠. 참, 록 밴드가 뭔지 잘 모르시죠? 휴, 좀 있다가 자세히….

어쨌든 그 설움의 밑바닥은 아마 당신이 '울밑에 선 봉선화야' 를 만들던 때의 마음 바닥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내 가슴 저 밑바닥에는 당신의 '울밑에 선 봉선화야' 가 들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요즘 애들은 '구리다' 고 하지만, 어쨌거나, 들어있는 게 사실이죠. 당신도 남의 음악을 듣다가 듣다가, 나라 잃은 설움이 북받쳐 그 노랠 만드셨겠죠□ 소리로 치면, 아직도 우린 나라를 잃고 있는 셈이랍니다.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릴 께요. 20세기에 우리나라의 소리는,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귀는 두 번의 큰 충격을 겪습니다.

한 번은 1910년, 일본인들이 우리를 집어삼킨 일 이후의 소리의 충격, 다른 한 번은 1945년,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진주한 이후의 소리의 충격. 당신도 겪으셨지만, 일제 36년 동안 우리의 가락이나 음계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뽕짝' 으로 변형, 심지어는 왜곡되는데 그게 대중음악의 여전한 기본 어법의 하나입니다. 요즘도 당신이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음악을 하는 이른바 '전통가수' 들이 있답니다.

또하나는 당신이 못 겪으셨을텐데, 이른바 '록' 이라구요. 미국에서 퍼뜨린 음악의 상륙이죠. 해방 후 나라가 둘로 갈리고, 6.25 동란을 겪으면서 나라의 남쪽, 그러니까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땅덩어리인 남한의 미국에 대한 의존은 절대적이었습니다.

50년대 후반에 '록' 이라는 게 들어오는데, 그 이후의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뽕짝 풍의 음악에 길들여진 귀와 손과 목청이 록적인 어법과 만나고 헤어지는 역사였답니다.

록이 뭐냐면, 원래는 흑인들이 하던 음악이예요. 근데 백인들이 도둑질하여 '우리의 음악입네' 하는 거죠.

근본적으로는 록 안에 민중적인 정서가 있긴 있어요. 우리랑 맞는 부분도 있구요. 비틀스라구, 아세요? 60년대 초반의 영국 록밴드요. 슬픈 이야기이지만, 미군 부대, 특히 '8군 무대' 라고 부르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록 찌꺼기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가 해방 후 젊은 세대랍니다.

신중현이라는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가 있는데, 그는 뽕짝적인 것을 잊고, 다시 말해 우리 귀에 못이 박힌 치욕의 소리를 잊고 새로운 소리의 대중음악을 만들어보자 했었죠. 그 기본 어법은 록이었습니다.

우리 귀에 극심한 충격을 준 그 두 종류의 소리가 현재의 우리 대중음악판의 지형도를 짜주고 있습니다. 서태지도 있고 김민기도 있고 인디 밴드들도 있지만, 기본은 여전히 그렇습니다.

북한?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전혀 다른 소리의 역사를 살았거든요. 그러니, 여전히 '울밑에 선 봉선화야' 의 설움이죠, 빨리 통일이 돼야 온전한 우리 소리가 나올텐데….

이런, 설움 타령하다가 '20세기여 안녕!' 같은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쳤는데, 그냥 마무리할께요. 오늘은 제가 멤버로 있는 밴드가 홍대 근처 클럽에서 공연을 합니다.

놀러 오세요! 저는, 이제 그만 기타줄 갈아 끼우러 가야겠어요. 오늘은 기타줄 좀 안 끊어먹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당신의 혼백, 요즘은 어느 소리의 들녘에 계십니까.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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