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서 만난 4대 종교, 이게 소통·융화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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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궁극적 진리의 자리에선 모든 종교가 만나리라 봅니다.”

원불교 이성택 교정원장은 “원불교의 선(禪)은 앉아서만 하는 게 아니다. 생활 속에서 언제든, 어디서든 한다. 그래서 ‘애니콜’이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26일 서울 한남동에서 원불교 교산(敎山) 이성택(66) 교정원장을 만났다. 지난 3년간 원불교 행정수반을 맡았던 그는 다음달 9일 퇴임한다.

이 교정원장에게 퇴임 소회를 물었다. 그는 ‘전임 대통령의 국장’ 얘기부터 꺼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을 보면서 참 많은 걸 느꼈습니다. 저는 거기서 한국 사회의 저력을 봤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국장을 치를 때 4대 종교가 다 올라가서 독경(讀經)을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건 한국 사회만 가지고 있는 소통과 융화의 강한 문화적 풍토죠. 그래서 세계의 보편윤리·보편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저력도 우리에게 있다고 봅니다.”

“임기 중 가장 보람 있던 일이 뭡니까?”라는 물음에 이 교정원장은 ‘2007년 7대 종교지도자 성지 순례’를 꼽았다.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유교·천도교·민족종교 등 7대 종교 수장이 함께 서로의 종교 성지를 순례하는 자리였다. “상대방 종교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어요. 그런 의미 있는 행사가 최근에는 뜸해지는 것 같아서 아쉽죠.”

이 교정원장은 ‘종교간 소통’을 위해선 ‘교조(敎祖·종교의 창시자)’와 ‘교조가 깨우친 진리’를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원불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원불교는 교조(敎祖·종교의 창시자)를 신앙하지 않아요. 교조가 깨우친 진리를 신앙하는 겁니다. 그걸 일원상(一圓相)으로 표현한 거죠. 각 종교가 자신의 교조만 내세운다면 대화가 안됩니다. ‘교조의 자리’가 아니라 ‘교조가 깨우친 진리의 자리’에서 모든 종교가 통하는 겁니다.”

종교뿐만 아니라고 했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 사회로 옮겨가는 시대적 흐름도 맥을 같이한다고 했다. “산업사회는 수직적인 사회죠. 위계질서가 있는 관료적인 조직사회죠. 그런데 지식정보사회는 다릅니다. 수평적인 사회죠. 위계질서가 아니라 학습에 의해 조직이 굴러가죠. 따져 보면 정보를 조절하는 게 지식이고, 지식을 조절하는 게 지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구심점도 정보에서 지식, 지식에서 지혜로 옮겨가는 거죠. 정보나 지식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지혜니까요.”

간담회 말미에 가슴에 담고 있는 ‘좌우명’을 물었다. 이 교정원장은 “절대 감사”라고 답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절대 감사’는 저 사람이 내게 잘해 주니까 감사하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감사죠. 100% 감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비우지 못하면 ‘절대 감사’가 나오질 않습니다. 지금까진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 세상이었죠. 이제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세상이 돼야 합니다. 그게 바로 상생(相生)의 시대죠. 이 ‘절대 감사’야 말로 그런 상생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입니다.”

이 교정원장은 다음달 4일부터 원광학원 이사장을 맡게 된다. 원광학원은 원광대·원광보건대·원광디지털대 운영 재단이다. 원불교 후임 교정원장은 전산(田山) 김주원(61) 교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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