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넘어] 16. 안드레이 슈멜리코프 러 모스필름 부소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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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러시아(옛 소련)는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1917년 소비에트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은 당시 신생매체에 불과하던 영화의 유용성을 일찍 간파했다. 그에게 영화는 인민을 선전.선동하는 데 적합한 '혁명의 도구' 였다. '영화열차' 를 만들어 농촌지역까지 순회하면서 영화를 틀어줄 정도였다.

이같은 지원에 힘입어 소련의 영화기술은 빠르게 진전했다. 영화기법상 큰 획을 긋는 '몽타주' 이론이 20년대 소련에서 에이젠슈타인에 의해 창안됐고 다큐멘터리 촬영술 등도 발달했다. 이후 70년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최근의 알렉산드로 소쿨로프 감독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영화는 서방과는 독자적인 자기만의 길을 걸어왔다.

세계 영화사는 곧 러시아 영화사' 라고 공언할 만큼 이들은 자국 영화에 대한 자긍심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동구권의 붕괴와 연방의 해체 이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영화산업도 이전의 영광에서 많이 후퇴한 듯하다. 러시아 최대 영화제작사인 모스필름의 부소장 안드레이 슈멜리코프를 만나보았다.

-러시아 영화제작 상황은.

"90년부터 모스필름 조직이 재편되고 난 이후 과거 약 1백편에 달하던 제작 편수가 많이 줄었다. 이전엔 정부 예산으로 운영된 국영기업이었으나 이제 모든 자산은 일시적이지만 우리들의 소유로 돼 있고 소장도 우리 손으로 뽑는다. 법적으로 따지면 자유로운 독립 스튜디오가 모여 콘체른(연합)을 이룬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러시아 영화의 경향은.

"러시아에서도 '타이타닉' 과 같은 환상적 영화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영화의 전통은 '선량함' 이다. 이를 기초로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반영하려 한다. 마치 공황기의 미국 영화처럼 우리 현실과 그에 대응하는 휴머니즘이 러시아 영화의 이념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22세 된 내 아들은 모스필름.레닌그라드필름.고리키영화제작소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도 서방의 영화 비디오를 본다. 그러나 그런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탐정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는 '왜 그런 영화를 보느냐' 고 반문한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든 대형영화(블럭버스터 영화)같은 것은 비용 때문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만들 수 없다. 대신 지금까지 러시아 영화가 그래왔듯이 인류의 새로운 과제를 인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주제와 형식을 개발해나갈 것이다."

-러시아에서 영화가 살아남겠는가.

"모스크바 영화제에 참석한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영화의 미래가 없다' 고 말한 것에 놀랐다. TV때문에 영화가 어려운 상황에 몰려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영화는 어떤 시대건 살아남을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문학적 전통과 예술적 전통을 지닌 러시아는 21세기에도 서구의 것과 다른 주제와 표현양식으로 영화 예술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김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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