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앞에서 울려 퍼진 김정은 찬양가 ‘발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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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에서 둘째)이 이달 초 황해북도 예술극장에서 셋째 아들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발걸음’이 포함된 공연을 관람했다. 김 위원장 오른쪽으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여동생인 김경희 당 부장이 보인다. 왼편은 사로청위원장을 지낸 최용해 황북도당 책임비서. [연합뉴스]

김정일(67)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된 셋째 아들 김정은(25)을 찬양하는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북한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이 사리원시 황해북도 예술극장을 방문해 “도 예술단의 개관 공연을 당정 간부들과 함께 관람했다”고 지난 9일 전했다. 이 보도에서 중앙TV는 김정은 찬양 가요로 알려진 ‘발걸음’을 합창하는 장면과 함께 공연 제목이 떠 있는 현장 자막을 내보냈다. 후계 문제와 관련한 행사에 김 위원장이 참가한 것으로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김정은에 대해 김정일이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과거 김일성이 후계자 김정일을 공개석상에서 치켜세우던 수준으로까지 김정은 체제 구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공연 관람에는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부장과 남편 장성택 당 부장,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이 함께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김정은 후계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이들 간부와 함께 발걸음 공연을 본 것은 후계 문제가 내부적으로는 공식화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경희·장성택은 친인척 후견인으로, 김기남은 선전선동 전문가이자 김일성 가계우상화 담당으로 후계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정보 당국은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에 김정은이 수행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김정은도 공연장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발걸음’이 공연에 오른 사실은 관계 당국의 영상 분석에서 파악됐다.

북한은 그동안 후계 논의 사실을 부인해 왔다. 지난달 10일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외신에 “현 시점에서 후계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8월 건강 이상 이후 후계를 서둘러온 김정일은 외부에 김정은이 부각되지 않게 연막을 쳐 왔다”며 “공연 관람 사실은 김정일의 뒷받침 아래 후계 구축이 착착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정일에 의한 ‘후계 논의 중단 지시설’ 등은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다.

◆찬양가요 ‘발걸음’=3절로 구성된 행진곡 풍의 노래로 올 들어 주민들에게 본격 보급됐다. 노래 구절에 나오는 ‘김 대장’은 김정은을 지칭하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해 왔다. 노래의 “우리 김 대장 발걸음 2월의 위업 받들어” 등은 후계 진행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2월의 위업’은 김정일 생일(2월 16일)과 맞물려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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