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신종 플루 사망 급증하자 연방정부 개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미국 시카고 리처드댈리대 의료진이 24일(현지시간) 한 여학생의 코에 스프레이형 신종 플루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종 플루 고위험군인 학생·고령자·임신부에게 우선적으로 백신을 접종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신종 플루 확산에 대응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시카고 로이터=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에 대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보건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염 지역과 사망자 수가 계속 늘기 때문이다. 특히 계절독감까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을 맞아 상황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미 보건당국은 신종 플루 환자가 발생한 지난 4월 말에는 ‘공중보건 비상상황(Public Health Emergency)’을 선포하고 검사용 시약과 치료약 마련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중심으로 한 예방과 확산방지 노력이 주효했는지 여름까지만 해도 신종 플루 치사율은 일반적인 독감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가을 들어 감염 지역과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유아·청소년 사망이 100명에 육박하자 강력한 조치에 나선 것이다. 미 언론들은 신종 플루 백신 예방접종 일정이 지연된 것도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미 보건당국은 당초 이달 중순까지 1억2000만 명에게 백신을 접종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산량이 이를 따르지 못했다. 결국 11월 중순까지 5000만 명, 12월까지 1억5000만 명에게 백신을 접종하도록 계획이 바뀌었다.

어쨌든 이번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됨에 따라 신종 플루에 대한 대응은 훨씬 체계적이고 빨라질 전망이다. 각종 연방 법규를 뛰어넘어 신종 플루 차단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정책 담당자인 보건장관에게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의료기관들은 밀려드는 신종 플루 의심환자들의 검진과 격리치료를 위해 병원 건물 밖에 텐트 등 가건물을 설치해 운영해 왔다. 그러나 연방 법규는 치료시설이 병원 정문에서 약 230m 이상 떨어질 경우 연방정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도록 해 일부 병원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비상사태 선포로 이런 법규의 적용이 중지된다. 또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으면 의료기관들이 학교나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에 직접 응급시설을 설치해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백악관 측은 “이번 비상사태 선포가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이 닥치기에 앞서 취해졌던 조치들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통상 허리케인의 경우 해당 지역을 재해지역으로 선포해 연방정부가 신속하게 자금과 복구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종 플루와 관련해 재해지역 선포보다 더 엄중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택한 것은 감염 지역이 미 전역을 망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국가비상사태=미 ‘국가비상사태법’에 따라 미 대통령이 선포할 수 있는 권한 중 하나다. 대통령이 주 차원을 넘어 연방정부 차원에서 긴급한 위기에 대해 엄중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을 때 이를 선포할 수 있다. 일정 기간 담당 분야 책임자에게 기존 법규를 뛰어넘는 권한을 부여해 문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크다. 과거의 예로 볼 때 정치·군사·외교적인 경우에 선포되는 경우가 많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