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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끄집어낸 폴더, 그 속에 담겨진 수많은 질문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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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05면

1 문경원 작 Sungnyemun III, 2009 Single Channel Video 5 min 15 sec, Looping

미디어 아트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골치가 아프다는 분, 적지 않을 것이다. 브라운관에서 알듯 말듯한 화면들이 선뜻선뜻 스쳐 지나가고 뜻도 줄거리도 모를 다이얼로그가 마치 소음처럼 흐르는 것을 보면 대부분 그런 느낌을 가질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천재 백남준이 일찌감치 일갈한 이 ‘고등 사기’는 어느새 비옥한 토양을 일궜다. 그리고 그 땅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색깔의 꽃이 피고 색다른 맛의 열매가 맺힌다.

‘가상선 THE IMAGINARY LINE’, 10월 14일~11월 15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

서울 삼청동 초입의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11월 15일까지 열리는 ‘가상선’ 전시는 해외에서 높은 평판을 얻고 있는 한국 미디어 아트의 수준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이용백·전준호·문경원·최우람·박준범·진기종·오용석 등 미디어 아티스트 7인의 흥미로운 최근작들을 모았다. <관계사진 9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통나무 위에 서있는 거대한 노란 물체를 볼 수 있다. 이용백(43) 작가의 ‘New Folder-Drag’다. 컴퓨터를 켜면 늘 마주하는 그 노란색 폴더다. 쉽게 만들고 쉽게 지울 수 있는 폴더. 하지만 이 작가가 현실에서 만들어놓은 현실의 폴더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엄청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폴더 앞 벽면에는 영상이 펼쳐진다. 노란 폴더가 어느새 베이징으로 옮겨져 있다. 어린이들이 폴더를 끌고 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가상에서 끄집어낸 현실에서 작가는 존재의 근원적 이유부터 제3세계 노동력에 이르기까지 여러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의 특징이라면 장소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일 것이다. 전준호(40) 작가의 ‘Hyper Realism-North Korean Bill’은 북한돈 100원권 뒷면을 고스란히 화폭으로 옮기고 그 속을 거니는 사람을 만들어낸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품. 마치 ‘역사스페셜’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Panic Disoderius’의 오른쪽 끝에서 어딘가를 몰래 훔쳐보는 사람은 작가 자신이다.

2 이용백 작 Pieta, 2008, FRP & Iron Plates 400 × 340 × 320 ㎝

오용석(33) 작가의 비디오 작품 ‘Memory of the Future’는 짜깁기한 듯한 화면이 인상적이다. 과거 사진 속의 한 공간, 작가가 촬영한 현재의 그 공간, 그 공간이 배경인 영화의 한 장면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 각기 다른 시간과 사건 속 공간이 한 화면에서 묘하게 충돌하다가 또 화합한다.

작가 전지적 시점을 즐기는 박준범(33) 아티스트의 작품 ‘Parking’의 원 배경은 우리가 늘 보는, 주차하고 출발하는 일상이다. 이 화면 위에 등장하는 작가의 손은 마치 장난감 차를 주차하며 노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조물주의 그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직접 등장해 건조물을 만드는 과정을 찍은 ‘Strong Piety’와 그 과정을 사진으로 재조립하는 손이 등장하는 ‘The Occupation2’를 나란히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은 더욱 확실해진다.

수많은 픽셀로 불타버린 ‘숭례문’을 만들고 다시 그 픽셀을 수많은 점으로 해체해 버리는 문경원(40) 작가의 ‘숭례문Ⅲ’, CNN방송을 보고 있는 이라크인의 방과 알자지라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미국인의 방을 재현한 ‘On Air_Aljazeera’와 ‘On Air_CNN’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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