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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회가 가정친화적이어야, 출산율 1.12명 벗어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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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07면

외교부의 저출산 문제 담당 대사로 임명된 백지아 국제기구 협력관. 신동연 기자

올여름 6년간의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백지아(46) 외교통상부 국제기구 협력관이 외교가에선 낯선 이름의 대사(大使) 타이틀을 달았다. 저출산 고령사회 담당 대사(Ambassador for Population Issues). 지난달 말 국무회의가 끝난 뒤 이어진 국무위원 저출산 대책 세미나에서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도 기여할 게 있다”며 아이디어를 낸 후 백 대사에게 이달 초 대사 임무를 부여했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12층 그의 사무실에는 동료들, 특히 여직원들이 보낸 화분들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저출산 대사’ 된 백지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 협력관

“원래 외교부가 하는 일이 정부 부처와 바깥을 연결하는 눈 역할이다. 현재 맡고 있는 업무가 국제기구 관련 일이니까 제 일을 하면서 저출산을 극복한 지혜를 잘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의 일을 돕는 거다.”

백 대사는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 탓에 올해 예상 출산율이 1.12명으로 떨어질 것이란 자료를 보여 주며 “내년 상반기 중 복지부가 확정할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안’(2011~2015년) 작성에 기여하도록 1년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저출산 대사직을 맡으란 얘기를 들었을 때 생소하진 않았는지.
“유엔국에서 인권사회과장을 하고, 제네바 대표부에서 일하면서 익숙한 주제다. 출산과 육아 문제는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유엔총회나 유엔경제사회이사회(ESCAP)에서의 활동이 저출산 이슈와도 다 연계된다고 본다.”

백 대사는 대사로 임명된 직후부터 저출산 문제 극복에 노력해 온 선진국의 사례를 수집했다. 그는 우선 범위를 좁혀 공공부문 여성의 출산·육아 지원 시스템에 포인트를 뒀다고 한다. 기업 등 민간 부문은 여성 근로자들을 위한 출산·육아 지원 역량이 크고 신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외 공관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 나라 가운데 한국을 제외한 20개국의 제도를 연구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게 스페인(출산율 1.38명). 중앙정부 여성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출산장려정책(Plan concilia)이다.

“스페인 공무원 가운데 여성이 50.3%인데 시험관 임신을 시도하는 여성들에게 근무 시간 일부를 배정해 주고, 입양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선 입양할 수 있도록 2개월의 휴가까지 주고 있다”고 전했다. 백 대사는 12월 초 스페인 출장 길에 부총리실 관계자를 만나 출산장려정책을 상세하게 알아볼 예정이다.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한 명 있다고 들었다. 아이가 하나인데 저출산 대사를 맡으셨다.
“하하. 나는 다산 경험자로서 출산을 장려하고 홍보하는 대사가 아니다.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일과 병행하며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을 찾는 역할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힘들어 하나만 낳고 포기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사정을 나는 안다. ‘뭘 도와주면 되겠는지’를.”

-어떻게 일과 육아를 병행했나.
“일하는 여성 대부분이 전쟁처럼 하루를 살 거라고 생각한다. 20년 결혼 생활 중 8년만 남편과 함께 살았다. 외교관들은 해외 근무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근무할 땐 사무실·집·아이 학교, 이 삼각형 거리를 최대한 좁혔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오전 일 끝내 놓고 점심 때 급식 당번을 한 뒤 김밥 한 줄 사서 사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무악재와 청사 사이를 거의 날아다녔다.”
백 대사는 이참에 외교부 여자 후배들과 직장에 다니는 부인을 둔 남자 후배들을 위한 지원책도 함께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외무고시 합격자의 절반이 여성이고, 행정·기능직 여성직원을 포함하면 전체 외교부 인원의 25%가 여성이다. 부부 외교관도 17쌍이나 된다.

백 대사는 사무실의 세계전도를 가리켰다.

“우리 여성 외교관들은 KTX를 타고 주말에 만날 수 있는 부부들을 부러워한다. 지구 건너편에 떨어져 사는 경우도 있다. 가임기에 해외 공관 근무를 하면서 임신·출산·육아를 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해외 근무 시기를 조금씩 신축적으로 적용하는 ‘가정친화적인 인사정책’을 해 줄 것을 윗분들께 건의했다. 육아휴직제도가 생기기 전 어느 부부 외교관의 경우 부부와 아이가 세 나라에 흩어져 사는 경우도 있었다.”

백 대사는 청사 내 탁아소 설치 문제, 육아 휴직 시 지원 인력 확보 등 지원책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께 인사를 드렸더니 외교부 출산율도 2.1명으로 올리라는 미션을 주셨다. 잘만 하면 이 미션도 완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백 대사는 김경임(12기·은퇴) 전 튀니지 대사에 이어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외무 고시에 합격(18기)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4학년 1학기 때 이른바 ‘소녀 급제’를 했다. “저희 세대는 그래도 친정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희생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사회가 제도적으로 지원해 주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다. 해외 사례를 연구하면서 육아시설의 단순한 확충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세대를 인간 중심적이고, 건강하며 행복한 인간으로 키워 내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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