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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를 따르고 시장에 맞서지 마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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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26면

친구 얘기다. 그는 대기업 대리다. 무리한 선물·옵션 투자로 그간 직장에서 번 돈을 날렸다. 자산과 부채를 총정리하고 나면 딱 400만원이 남는단다. 직장 생활 5년의 대차대조표다. 지나가는 외제 차만 보면 속이 쓰리다고 한다. 몸과 마음도 피폐해졌다. 시세 화면에서 눈을 못 떼니 회사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 등락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곤 했단다.

고란과 도란도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투자 습관을 바꿨다고 한다. 수십 권의 투자서를 읽고 전문가들의 강연을 쫓아가 들었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투자의 세계라 자신의 능력으로는 ‘최후의 웃는 자’가 되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따라잡기’다. ‘투자의 구루(대가)’로 인정받은 이들을 따라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내 수준에서는 안심이 안 돼 글로벌 수준에서 인정받은 대가의 투자법을 모방했다. 해외 주식 거래 계좌를 튼 뒤 골드먼삭스 주식을 샀다. ‘주식 투자로만 세계 2위 부자’가 된 워런 버핏이 골드먼삭스에 투자한 걸 좇아서다. ‘상품 투자의 대가’ 짐 로저스가 금에 투자하라고 한 조언을 믿고 금 시세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는 상장지수펀드(ETF)에도 투자했다. 현재 골드먼삭스 주가는 투자 당시보다 20% 올랐다. 금 값은 20% 올랐는데 그가 산 ETF가 금 시세의 두 배만큼 움직이는 상품이어서 수익률이 40%다. 진짜 좋은 것은 ‘평온한’ 마음이란다. 며칠간 주가를 확인 안 해도 걱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당장은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현대인베스트자산운용의 김영배 주식운용팀장은 “내년에는 펀드 투자로 기대만큼 수익을 올리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이들은 보통 최소 연 20%의 수익을 기대한다. 그런데 요즘 상황에선 그만한 수익을 내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코스피 지수는 1650 수준이다. 여기서 20% 오르면 2000 선이다. 2000 선은 전 세계 시장에 자산 버블이 일었던 2007년 10월의 주가다. 더블딥(경기 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 침체 현상) 논란이 가열되는 지금 당시 주가 수준으로의 복귀를 예상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 어디에 투자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김 팀장은 금을 추천했다. 글로벌 출구 전략이 본격화되면 인플레이션이 문제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은 금이다. 이미 너무 많이 오르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방준비은행(Fed)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천천히 금을 팔라”고 덧붙였다. ‘연준에 맞서지 마라(Don’t fight the Fed)’는 월가의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조언이다.

투자 세계에서 개인들은 약자다. 강자(구루나 중앙은행)에게 맞서지 않고 그들을 좇는 게 개인들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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