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국정조사를 주시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각은 됐지만 옷 로비 사건 특별검사가 라스포사 정일순(鄭日順)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검찰의 사건수사가 짜맞추기 축소수사였다는 비판이 옳았음을 의미한다.

사건수사를 맡은 검찰은 능력이 부족했던가, 의지가 없었던가. 의심이 가는 쪽은 후자다. 사건 당시의 검찰총장이었고 수사 당시의 법무장관의 부인이 사건의 핵심인물의 한 사람이었으니 한국의 검찰문화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연목구어(緣木求魚)였는지도 모른다.

옷 로비 사건 수사와 비교해 언론장악문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태도는 어떤가. 두 사건을 저울에 올려놓고 달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 정도로 거기서 거기 같이 보인다.

주요 신문들의 사설과 칼럼이 여러차례 지적한 대로 검찰은 문일현(文日鉉)씨가 유학 중인 베이징(北京)에서 1백90번 이상 전화통화한 상대 중에서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의 사람들은 불러서 조사를 하지 않았다.

사건의 진원지인 이종찬(李鍾贊)국민회?부총재의 사무실도 수색하지 않았고, 李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대충대충 끝낸 인상이다.

검찰은 어정쩡한 조사결과를 가지고 언론장악문건은 문일현씨가 개인적으로 만들어 정치적인 파문을 일으킨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종찬씨는 뭐가 그리도 흡족한지 계속 웃고 있고 문일현씨는 오늘 현재 그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비밀과 함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검찰이 그것을 안찾은 것인가, 못찾은 것인가의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검찰은 여권에는 '정형근(鄭亨根)죽이기' 의 호기(好機)를 전리품으로 안겨줬다. 문건은 가고 정형근만 남은 꼴이다. 언론탄압의 실체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언론문건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이렇게 여권의 구미에 맞게 끝나는 시기에 국회에서 여야가 정형근 의원 증인채택문제를 제외하고는 국정떻玲?사실상 합의를 본 것은 다행한 일이다. 꼭 나와야 할 사람들이 우선은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은 것이 불길하다.

그러나 청문회 과정에서 부를 사람은 모두 부르게 되는 정치력을 기대하면서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마음으로 국정조사를 지켜보겠다.

옷 로비 사건에 관한 국회 청문회는 성과가 없었다. 정일순씨에 대한 영장 청구는 그녀가 국회 청문회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만 막상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언론장악 문건에 관한 청문회를 준비하는 국회는 옷 로비 의혹에 관한 국정조사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검찰수사가 충실하지 못해 사건이 국정조사로 넘어가고, 국회 청문회도 변죽만 울려 결국 특별검사가 나서야 하는 전철을 밟는다면 검찰수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지금 이상으로 증폭되고 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올 수 있다.

언론문건은 중앙일보 사태에 나타난 권력에 의한 언론장악 의혹의 실체를 밝히는 열쇠다. 중앙일보가 당하는 고통은 거의 언론문건이 건의한 대로다. 그런데도 국민회의는 한때 언론문건을 중앙일보의 자작극으로 뒤집어 씌웠었다.

국회는 언론문건에 관한 공방으로 실종된 언론장악 의혹의 몸통을 밝혀내야 한다. 언론문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그것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언론장악 기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한국 언론이 단군 이래 최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여권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의 집권층이 언론의 비판을 수용하는 데 극도로 인색한 데서 권력과 언론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권이 정말 결백하다면 국정조사야말로 언론장악 시도의 일환으로 중앙일보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누명을 벗는 최상의 기회가 아닌가.

21세기의 문턱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편협한 정략적 시각을 벗어나 대승적인 자세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으면 역사에 오명을 남길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