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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복권 발행 실태와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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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복권발행의 가장 큰 목적은 공적 기금 조성이다. 하지만 국내 복권사업은 '고질적인 저수익구조' 로 인해 이 원론적 목적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고 있다.

◇ 저수익구조와 기금사업차질〓현재 국내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복권은 심각한 저수익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건실하다는 주택복권의 경우 독점발행하던 90년까지만 해도 40%를 웃도는 기금조성률을 보였으나 지난 4년간(95~98년)은 기금조성률이 평균 25.1%로 기금조성상태가 악화됐다.

특히 지난 93년부터 발행된 기술복권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95년 수익률은 21.12%였으나 올해 10.5%로 절반으로 줄었다.

판매율도 형편없다. 체육복권의 경우 판매율은 97년 75%에서 올해 29.1%로 급감, 판매된 분량의 두배가 넘는 복권을 폐기처분해야 했다.

이같은 저수익.저판매구조는 기금조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산림청이 지난 9월 맑은 물 공급의 재원확보를 위해 발행한 녹색복권은 올해 80억원어치를 판매할 계획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기금조성률을 불과 10% 정도로 잡고 있어 목표치 1천억원을 달성하는 데 수십년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기금이 자투리로 모이다 보니 '일단 쓰고 보자' 식으로 수익금을 당초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도 관광복권. 관광복권은 당초 복권수익금을 제주도청 특별회계로 전입, 관광사업 및 제주도지역 개발사업에 쓰기로 돼있지만 수익금(70여억원) 대부분을 제주도내 60여개 중.고등학교의 무료급식비로 사용했다.

◇ 저수익의 이유〓복권전문가들은 과당경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에 나오고 있는 복권은 8개 기관의 13종. 시장규모는 뻔한데 동일한 게임방식(추첨.즉석)의 복권이 쏟아져나오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 발행기관들은 한정된 수요에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판촉비용을 쏟아부으며 덤핑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기금으로 적립돼야 할 돈이 발행기관들의 과당경쟁에 따른 판촉비용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복권발행기관들이 공식적으로 소매상에 주는 수수료는 10%. 하지만 한 복권판매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판매량이 많은 수도권 판매소에 공급되는 추첨식복권 한권(2백장)당 공급가격은 8만5천~9만원선으로 수수료율이 최고 15%에 달했다.

즉석복권의 경우는 소매상 수수료가 최고 25%에 달하고 있다.

복권판매대행사 에드앤리서치의 오철근(吳哲根)사장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매회사가 도매.소매상에 담보도 확보하지 못하고 외상으로 복권을 주는 거래가 일반화돼 있고, 미수금이 많아 판매조직이 극히 부실화돼 있다" 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복권난립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공익을 명분으로 내건 각 부처의 신규복권발행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환경부의 경우 지난달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환경재원 마련을 위해 내년 하반기에 환경복권을 도입할 계획임을 밝혔다. 주택은행 역시 새 천년을 맞아 한 사람이 최고 20억원을 탈 수 있는 '밀레니엄복권' 을 한시적으로 발매했다.

관련업계는 가뜩이나 과당경쟁이 일고 있는 시장상황에서 이같은 신상품 등장은 다른 복권의 판매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관리허술〓현재 복권업무는 모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 발행기관의 경우 3년 동안 복권사업부의 국장.부장이 세번, 차장이 네번 바뀌었다.

이같은 잦은 책임자 교체로는 경험축적도 안되고 복권판매기법 개발은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정부에서는 복권사업이 공익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업계 지원에는 인색하다. 복권은 사행심(射倖心)조장 품목으로 지정돼 복권판매회사는 보증기관에서 대출도 받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대부분의 판매조직 종사자들은 사기저하와 낮은 수익 때문에 복권판매업을 부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판매회사 13년경력의 실장은 "월급이 1백30만원(보너스 연 3백%)에 불과하다. 평생직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일하고 있다" 고 고백했다.

◇ 복권정책 부재(不在)〓이같은 복권산업의 구조적 문제점들은 결국 체계적인 복권정책의 부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국무조정실에 '복권발행조정위원회' 를 설치, 상금액과 발행량 등을 조절해왔으나 자율 경쟁을 막아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폐지했다.

대신 올초 발행기관과 주무부처가 참여하는 '복권발행협의회' 를 설치했으나 실무자급의 회의가 2~3차례 있었을 뿐 회원들의 공식회의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

복권시장 활성화의 대안으로 떠오른 온라인복권 도입작업도 당초 올해안에 기본계획안을 확정하고 운영기관을 선정키로 했으나 법령마련 등 기초작업조차 진척이 안된 상태이다.

기획취재팀=하지윤.왕희수.양선희.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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