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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의 FUNFUN LIFE] 행복은 바로 곁에 있는 걸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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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전국 공연길에 함께 다니며 끝말 잇기 동무가 돼 주고 있는 착한 안무팀(왼쪽 사진)과 해질 녘 휴게소에서 찍은 가을의 모습(오른쪽). 공주로 공연 가는 길에 하늘이 예뻐 칼럼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일부러 차를 세우고 촬영했다.

나는 가을이 싫다. 유난히 가을을 많이 타는 탓에 가을 문턱부터 겁을 내곤 한다. 쓸쓸함·외로움·귀찮음…. 모두 가을이면 내게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올가을도 그렇냐고? 그렇다. 지금 나는 차 안에서 스케줄 때문에 이동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마감시간을 대기 위해 빨리 써서 보내야 하는 이 다급한 순간에도 울적함을 달래기 힘들다. 아침·저녁 싸늘해진 날씨와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울컥해진다. 심지어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만 봐도 ‘저 사람도 나처럼 외롭겠구나’ 하는 마음에 동병상련을 느낄 지경이다.

가을이 더 두려워진 건 4년 전쯤 크게 우울증을 겪고 난 뒤부터다. 그때도 가을이었다. 그 증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을 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일을 해도 즐겁지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또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싫어지고, 만나지도 않고, 전화받는 것이든 하는 것이든 다 귀찮았고 쓸데없는 주제로 떠들어대는 것조차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컴퓨터와 뜨개질과 싸우고, 음식 만들기에 시간을 보내고, TV를 보다가 아침에 해가 뜨고서야 소파에서 잠이 들고는 밤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서 소파에서 먹고 자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똑같이 보냈다. 눈을 뜨면 우리 고양이들이나 나를 반겨줄 뿐이었고, 그 당시의 남자 친구는 멀리 외국에 나가 있었다. 그저 혼자서 그 가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내가 단지 의욕상실 내지는 기대감이 적어진 것으로 생각했지 그것이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을 방목해버렸다. 그러다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 게 어느 날 TV 뉴스에서 들려온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들을 힘들게 했을까?’ ‘얼마나 지쳤기에 그런 방법을 택했을까?’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끝으로 ‘나는?’이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내 머리는 돌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거였다. 그때부터 행복이 무엇일까, 무엇을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는지를 생각했다. 집에 있는 학창시절의 앨범들을 뒤졌다.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고, 소풍 때 즐겁고 신났던 추억들을 상기했다. 그 당시의 즐거움과 고민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친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돈이 없어서 옷과 신발을 살 수 없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공부 스트레스도 없고, 내가 원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도 많다. 게다가 나는 가수가 되었고, 빚도 갚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살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학창시절 고민은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고, 오히려 더 나아졌다는 걸 생각해 냈다. 더 나쁘게 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좋을 쪽으로 흘러온 걸 되레 감사하며 다행으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고민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고민이 찾아온다. 그런데 어쩌면 이걸 우리 스스로가 찾는지도 모른다. 장애물을 크게 보는 순간 그 장애물은 우릴 압도한다 하지 않았는가(비전과 존재 혁명 글:강준민 중에서). 그리고 자기의 장애물을 너무 크게 보고 넘지 못했던 먼저 간 연예인들을 애도하면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내가 웃고 기뻤을 때를 떠올려 봤다. 엄마가 깨워주시는 목소리에 눈을 뜨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달음은 문득 왔다. 그 순간 내가 숨쉬고 앞을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소한 것까지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나는 그 가을의 우울증에서 점점 벗어날 수 있었고, 그 가을도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깨닫게 됐다. 이런 손님들은 그때 잠시 다니러 왔다가 곧 돌아간다는 것을.

나는 지금 4년 전의 우울증과 지금의 평범하고 달콤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없어진다면, 내 지인들은 날 위해 잠시 울어주겠지만, 세상은 나 없이도 계속 잘 돌아갈 거다. 이걸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나? 우리가 갈망하던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바라던 내일이라는 얘기가 있다. 나는 그들이 갈망하던 오늘을 보기 위해 이렇게 살아갈 거다.

지금 우울한 분 계세요? 그 치유법은 스스로 알고 있답니다. 세상과 놀고, 마주쳐야만 치료가 됩니다. 숨어있으면 세상이 날 찾지 못해요. 마지막으로 살지 말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보세요. 지금의 외로움과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답니다. 여기까지, 나의 우울증 극복기였습니다. 이 고백이 누구에게든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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