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씨, 문책기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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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는 3일 오전 상경했다. 울산대 강연을 마치고 항공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그는 취재진을 따돌린 채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의 수행비서와 보좌관도 핸드폰을 꺼놓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여의도 사무실은 굳게 잠겼고 출근했던 여직원마저 철수했다.

검찰의 소환 요구에 그는 "제3의 장소 등 자연스런 분위기에서는 검찰수사에 응하겠지만 검찰청 출두는 하지 않겠다" 며 불응했다. 정보기관의 책임자를 지냈고 여권 중진이란 점을 내세워 '모양새' 를 고려해달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면엔 대권주자를 꿈꾸는 자신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데서 나온 반응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그가 이번 사태를 보다 심각하게 보기 시작한 것은 국정원 문건 반출과 일부 문건의 유출을 문제삼아 자신을 옥죄어 오는 여권 내부의 문책기류를 감지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귀경 이후 모처에 머물며 여권의 핵심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2일 밤과 3일 오전에는 한화갑 총장과 전화접촉을 했으며 3일 오후에는 韓총장과 직접 만나 수습책을 논의했다. 또 당내 비주류를 포함한 중진들과도 해결방안을 상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자신의 차기구상에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고 판단했을 경우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그는 전직 국정원장을 지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기탈출의 카드로 꺼내든다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도 있다.

정가에서는 그가 이미 '섣불리 건드리면 큰일날 것' 이란 경고메시지를 요로에 던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소환에 불응한 것도 여권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해석인 것이다.

하지만 이때도 고민은 남는다. 문제가 여권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비화할 경우 싫든 좋든 정치생명이 걸리지 않을 수 없다. 李부총재로서는 '이겨도 남는 게 없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큰 부담이다.

이같은 점들을 종합해 볼 때 李부총재는 말을 가능한 한 아끼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독대(獨對)등을 통한 해결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과의 담판결과에 따라서는 당직 사퇴.대국민 사과 등 '제3의 길' 로 결말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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