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 10년 '골방 은신' 아리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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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자수한 이근안(李根安)전 경감은 검찰 1차조사에서 첫 한해를 제외하고 자신의 집에 숨어지냈다고 진술함에 따라 그의 도피행적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만천하에 얼굴이 알려진 李씨가 과연 남의 눈에 띄지 않고 10년 가량을 집에서 생활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로 인해 李씨의 해외도피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연 3백98만명의 수사인원을 동원했던 검경이 가택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 등도 의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 자택 은신 가능했나〓李씨는 서울 용두동 부인 申모(60)씨의 미용실을 중심으로 세차례에 걸쳐 이사했으며 최근까진 둘째 아들 집에서 지내왔다고 진술했다. 집 내부가 이웃들에 잘 보이지 않게 꾸며져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방문객들의 눈마저 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의 집은 李씨가 숨을 곳을 마련키 위해 골방 벽을 뚫고 안방쪽에 문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2~3명의 인부들이 동원돼 상당기간 공사를 진행했을 게 분명하다. 다른 방에 기거했더라도 이들 모두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세차례 이사를 할 때 李씨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 해외도피 안했나〓李씨의 주장과는 달리 그가 중국 등 제3국에 숨어지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검찰은 李씨가 해외생활을 했더라도 이를 완강히 부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도피 기간은 공소시효 기간에서 제외토록 돼있어 해외체류 사실이 드러날 경우 김근태(金槿泰)의원 고문혐의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는 까닭이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해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호텔에서 李씨를 본 적이 있다는 제보자를 확보, 조사중이다. 당시 李씨는 호텔 사장으로 행세했다는 게 제보자의 주장이다.

◇ 전국 활보 가능한가〓李씨는 수배 첫해 주로 기차여행을 하며 검경의 눈을 피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는 전국적으로 삼엄한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여서 검문 한번 당하지 않은 채 1년간 여행을 다녔다는 게 의심스럽다.

경찰 출신이어서 어떤 곳에서 검문이 이뤄질지 파악할 수 있다 하더라도 도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찰이 역과 항만 등 요지를 그처럼 허술하게 비워뒀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李씨는 나이에 비해 거구여서 변장을 했더라도 쉽게 발각됐을 것이다.

◇ 도피방조 없었나〓李씨 가족의 감시를 맡은 경찰은 은신 가능성이 큰 둘째 아들 집에 대해 가택수색도 제대로 하지 않아 도피 방조란 의심마저 받고 있다. 李씨가 숨어지낸 둘째 아들 집은 부인 申씨의 미용실에서 불과 8백여m 내에 있다.

李씨는 "가끔 집사람의 미용실에 가기도 했다" 고 밝혔다. 이웃들도 "申씨가 저녁 9시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 남자와 외출하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李씨가 주요 감시 대상인 둘째 아들 집에서 출몰하는 데도 경찰의 손길은 미치지 못했다.

또 "李씨가 숨어지낸 골방은 앞쪽에 많은 박스가 쌓여있더라도 주의만 기울이면 은신처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 이라는 게 수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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