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성 성폭력 피해 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난해 모 보험회사에 입사한 P씨(27)는 상사인 K과장(38.여)이 얼마전 회의시간에 "지각한 벌로 여성용 팬티를 선물하라" 는 지시를 내리자 최근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K과장뿐 아니라 다른 여성 상사들도 P씨에게 입사후 줄곧 "코가 너무 작다" "화장실에 자주 간다" 는 등 성희롱 성격이 짙은 농담을 건넸다. 지난달 말 야근중엔 K과장이 허벅지를 더듬어 P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피해구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J씨(30)는 동성(同性)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경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L과장(41)은 3년여 동안이나 엘리베이터.화장실 등에서 틈만 나면 J씨의 몸을 더듬었다. 입사 초기부터 "여자처럼 생겼다" 고 말해온 L과장의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J씨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어 견뎌오고 있는 형편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직장내 여성상사나 동성인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남성에 대한 성폭력 피해가 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남성 성폭력 피해 상담건수는 올 상반기에만 65건을 기록, 지난해 전체 건수인 66건에 육박하고 있다.

성폭력상담소 조중신(趙重信)부장은 "남자 아이를 상대로 한 성폭력이 대부분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성인 남성.청소년의 피해상담 사례가 해마다 2배 정도씩 증가하고 있으며, 여성에 의한 남성 성폭력 피해가 상당수" 라고 말했다.

남성 성폭력 피해는 또 또래 학생들에 의해 자행되는 학원폭력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중학교 후배를 집단 구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달 경찰에 구속된 10대 3명은 "말을 듣지 않는다" 며 동성인 후배들을 폭행하면서 성추행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유정(여)변호사는 "남성 성폭력의 경우 웃음거리로 치부되기 쉬워 잘 알려지지 않는다" 며 "현행 성폭력 관련 법규는 강간 등 일반 성폭력 피해자를 '부녀자' 로만 규정하고 있어 남성이 강제 성폭행을 당한 경우 강제 추행에 해당하는 처벌만이 가능한 등 피해구제에 허점이 있다" 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