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신문 1991~95] 최장기 집권 김일성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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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94년 7월 10일 평양]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일성이 10일 묘향산의 한 휴양시설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8월 15로 예정됐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자동 취소됐다.

북한은 93년 이후 영변의 핵시설 문제로 한미 양측과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하지만 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일성과 회담을 가짐으로써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남북정상회담이 극적으로 합의됐으나 김일성의 사망으로 핵문제.남북관계.북미관계 등 많은 부분이 다시 불투명한 상태로 돌아갔다.

김일성은 1945년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할 때 함께 들어와 48년 북한건국 후 수상을 맡았으며 6.25전쟁을 도발했다.

그는 조만식 선생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세력, 허가이를 비롯한 소련파, 김무정 등 연안파(중국 공산군 출신),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세력을 잇달아 숙청, 확고한 권력기반을 다졌으며 주체사상을 내세워 개인숭배의 대상이 됐다.

★이후 북한은 3년상을 치른다며 오랫동안 지도부를 공석으로 비워뒀다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군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북한을 세습통치하고 있다.

핵문제와 관련,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한.미 등 주변국이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경수로형 원자로를 건설해준다" 는 내용의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94년 10월 서명했다.

최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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