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넘어] 7. 프랑스 인문주의의 밑거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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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5월 학생운동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프랑스 지성계에 새로운 탈출구를 열어주었다.

'인간 주체' 를 강조함으로써 당시 운동에 나름의 영향을 미쳤던 실존주의가 지식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퇴조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통제 바깥에 놓여 있는 영역에 주목하는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포스트 구조주의)가 새로운 지적 준거틀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를 통해 프랑스 특유의 인문주의적 지성이 만발하게 된다.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고(저서 '담론의 질서' ) 지배권력의 사회통제 기술을 해부( '감시와 처벌' )한 미셸 푸코, 소비사회를 분석한 장 보드리야르, 욕망과 권력의 관계를 규명한 질 들뢰즈, 근대 체제의 코드로 작용해온 '동일성의 철학' 을 해체하려는 자크 데리다 등이 이 경향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이다.

이와 함께 인간 의식과 행위의 비밀을 푸는 하나의 열쇠로서 정신분석 이론이 유행한다. 특히 프로이트 이론을 새롭게 해석하고 발전시킨 자크 라캉은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같은 인문주의 정신은 시들기 시작했다. '5월' 의 중심지였던 소르본대학 정문 앞 볼테르 동상 뒤엔 토털 패션 GAP 직영점이 들어섰고, 그 맞은편에 있는 대학 직영서점엔 '폐점' 팻말이 붙어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홍세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저자)씨는 "아들에게 루카치의 책을 사주기 위해 전국 서점을 뒤져야 했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프랑스의 인문주의 전통이 머지 않아 생기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로 자연과 인간의 파괴가 극에 이른 만큼 정치적 소용돌이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크며, 그때 인문주의 전통은 바닥을 치고 솟아오를 것" 이라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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