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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열차 방사능 유출 핵물질 운반가능성 작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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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러시아의 극동지역 하산에서 북한으로 향하던 러시아 열차의 '기관차의'속도계에서 지난 18일 자연수치(시간당 통상 10~20 밀리 뢴트겐)보다 높은 시간당 85~90 밀리 뢴트겐의 방사능수치가 감지됐다.

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22일 오전 6시15분(한국시간 오전 11시15분) 이타르-타스 통신은 이를 나홋카발로 보도했다. 타스 통신의 보도는 짤막했다.

"러-북한 지역 국경세관이 북한행 기관차를 점검하다 방사능이 검출돼 기관차를 억류한 채 조사 중이며 방재당국의 결정에 따라 이 기관차의 운명이 결정될 것" 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열차를 통해 핵물질이 반출됐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사건에 깊은 관심이 쏠리게 됐다.

한국 대사관측이 지금까지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이 열차를 통해 핵물질이 운반됐거나 플루토늄 등 핵무기 원료들이 탑재 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 조사 중이긴 하지만 ▶핵물질 탑재흔적이 없고▶기관차의 기관을 가동했을 때만 시간당 85~90밀리 뢴트겐이 감지되고, 기관을 끌 경우엔 뢴트겐 양이 확연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반출 중이던 핵물질에서 누출됐거나 핵물질이 숨겨져 있었다면 방사능 수치의 감지량은 항시 똑같아야 한다. 따라서 러시아측도 핵물질의 밀반출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기관차를 계속 사용해야 하느냐는 안전성의 측면에서 조사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러 원자력연구센터측의 전문가들도 "산꼭대기에서조차 30 밀리뢴트겐 이상의 방사능 수치가 나오며 비행기를 타고 고도에 올라갈 경우 시간당 5백~7백 밀리뢴트겐이 나온다. 또 X-레이 촬영시에도 순간적으로 3백 밀리뢴트겐 정도가 나온다. 따라서 이번에 감지된 방사능 수치로는 핵물질이나 위험물질이 탑재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수준"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만의 하나 이번 사건이 북한으로의 핵물질 반입 등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합의가 뿌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북.미 합의에 따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원자력발전소 건설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장악력도 옛소련 시절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일부 세력들이 북한에 미그기를 불법수출했다가 뒤늦게 적발되기도 했다. 미국은 기회있을 때마다 러시아측에 미사일과 핵물질의 관리를 각별하게 요청해왔다.

사실 4자회담을 비롯, 최근의 한반도 정세는 철저히 러시아를 배제한 채 이뤄져왔다. 한국과의 수교로 북한과의 관계가 냉담해졌던 중국도 식량과 석유의 무상공급을 미끼로 북한과의 관계회복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핵문제에 이어 미사일문제까지 일단 매듭지어가며 전면적인 관계개선을 운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에 핵과 미사일의 원천기술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대체적으로 소외됐던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미묘한 시점에 이타르-타스 통신이 이번 보도를 낸 것이다.

물론 언론기관으로서 단순한 사실 관계를 아무 계산없이 보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러 정부기관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타르-타스 통신이 "순수하게 보도했다" 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러시아측은 비공식적으로 접촉한 우리측 관계자들에게 "한국측이 단순한 방재 차원에서 실시하는 조사를 북한에 대한 핵유출과 연관시켜 우려를 표명하는 데 오히려 우리가 당황해하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어떤 이유로 이번 보도가 불거져 나왔는지는 "이르면 이번주 중반 이후 자세한 조사결과를 밝힐 것" 이라는 그들의 말처럼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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