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불법보도 배상 '2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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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슈퍼마켓 체인점 푸드라이언사는 7년 전 ABC 방송사를 상대로 24억7천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ABC직원 둘이 푸드라이언사에 위장취업해 취재-촬영한 내용을 방영함으로써 푸드라이언사에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방영내용이 아니라 취재방법의 불법성을 문제삼은 것이다. 고기를 새 고기와 섞는 장면, 상한 고기를 표백제로 씻는 장면, 유통기한 표시를 바꾸는 장면들은 시청자에게 충격을 줬다.

방영 후 1주일간 푸드라이언사의 주식총액은 13억달러가 떨어졌다고 한다. 97년 1월 한 지방법원은 ABC사의 5백50만달러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그 후 항소과정에서 이 액수는 31만달러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 항소심 법원은 배상액을 단돈 2달러로 낮춰 판결했다. 푸드라이언사 사옥에 무단침입한 잘못에 대한 배상으로 1달러, 피고용자로서 고용주에게 불성실한 행위를 한 책임으로 1달러란 것이다. 항소심 법원에서도 취재방법의 불법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보도내용 자체에 잘못이 없다면 원고측이 보도로 인해 아무리 큰 손실을 보았더라도 취재과정의 위계(僞計)를 그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불법적 수단으로 성취한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원칙에 얽매이지 않은 판결이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미국 사회의 두 큰 원리가 엇갈리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 소송은 큰 관심을 모았다.

언론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비밀을 파고드는 것은 시민생활을 위협하는 큰 사회적 해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 국민대중의 보건에 대한 위협을 고발한다는 공익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관대한 판결을 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특성이 뚜렷해질수록 언론의 역할은 계속해서 커진다.

언론이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힘이 강해지는 한편에는 '견제 없는 권력' 이란 비판을 받을 만큼 사회의 건전한 원리에 위협을 일으키는 측면도 있다. 그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공익성' 의 기준일 뿐이다.

근래 들어 정권이 언론을 개혁하려는 것인지, 길들이려는 것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의 사명이 공익성에 있는 것이라면 언론정책의 기준도 공익성일 수밖에 없다.

정부와 언론은 서로 싸워야 한다. 누가 더 사회의 공익에 공헌하느냐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유착관계를 깨뜨리고 나와 '견제 없는 권력' 의 혐의를 벗는 것은 언론에 다행한 일이다.

푸드라이언사는 보도내용의 정당성을 문제삼을 수 없어서 취재방법을 걸고 넘어지는 '우회전법' 을 썼지만 법원은 언론자유를 옹호했다. 우리 사회의 언론개혁에도 이제 우회전략보다 정공법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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