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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동의 중국世說] 중국고전에 빛나는 미녀와 진정한 미인상

중앙일보

입력

시인 볼테르는 “맨 처음 미인을 꽃에 비유한 자는 천재이나, 두 번째로 같은 말을 한 자는 바보다”라는 명언을 했다.

아마도 지금 이 시점에 미인을 논하는 것은 너무 한가롭고 시대착오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학은 우리를 아름다움의 세계로 유혹하는 가치론적인 영속성을 지닌다. 찬란한 쇼윈도가 구매력이 부족한 쇼핑객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래서 그 많은 시인묵객들이 수 천년 노래해온 미인 예찬론은 지금도 그 광채를 연면히 유지해 오고 있다.

중국의 4대미인 하면 흔히 양귀비(楊貴妃), 서시(西施), 초선(初禪), 왕소군(王昭君)을 든다. 이들을 두고 중국 고대소설은 침어낙안(沈魚落雁)의 미모, 폐월수화(閉月羞花)의 가인 등으로 형용해 왔다. 이 뜻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나친 과장이면서도 신비감마저 주는 묘한 감흥이 일어난다. 침어는 물고기가 강변을 거니는 서시의 용모에 놀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는 뜻이고, 낙안은 기러기가 거문고를 타는 왕소군을 보기 위해 땅으로 떨어졌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또한 폐월은 초선의 양아버지인 왕윤이 “달도 내 딸에게는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라고 말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수화는 양귀비가 어느 꽃을 건드렸더니 그 꽃이 잎사귀를 말아 올리자 현종이 ”그대의 미모는 꽃도 부끄럽게 하는구나”라고 찬양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들 4대 미인에 항우의 여인 우희(虞姬)와 은나라 주왕(紂王)의 달기(妲己), 한 고조의 조비연(趙飛燕) 등을 더해 7대 미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날렵한 몸맵시에 춤의 고수였던 조비연을 ‘연수’로, 뇌쇄적인 풍만한 육체를 자랑한 양귀비 양옥환(楊玉環)을 ‘옥비’로 표현한 것이다.

위에 열거된 미인들은 대부분 군왕을 현혹시켜 나라를 기울어지게 한 경국지색이거나 미인계로 활용된 인물들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사 등에도 미인들로 인해 국가 흥망이 좌우된 사례가 자주 소개된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헬레네’에 반해 트로이 전쟁을 야기시켜 조국을 멸망케 했다. 또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절세의 미모로 로마의 명장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아 그를 로마의 패권경쟁에서 패배자로 전락시켰다. “미모의 아내와 국경의 성(城)은 전쟁을 부른다”는 서양 속담이 어울리는 대목이다.

이렇듯 고래로 수려한 미모가 망국의 비사를 남긴 채 불행한 종언을 고했건만, 오늘도 여성들은 ‘아름다움은 신의 미소’라는 신념으로 미에 집착하는 것 같다. 미의 속성에는 신비와 황홀이 숨쉬고, 도취와 기쁨의 선물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기에 미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여성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원래 미의 세계는 향기와 빛깔, 그리고 모양이 각기 다른 개성의 화원이다, 그런데 이 시대는 미인을 일정한 잣대로 정형화하여. 늘씬한 몸매에 작은 얼굴 속의 뚜렷한 이목구비 등을 미인의 기준으로 삼는 모양이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따라 요즈음은 인조미인을 만드는 성형외과 의사가 성직자만큼이나 존경 받는다고 한다

필자가 지난 봄 베이징의 기업인 부부들과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여성의 외모가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용모가 미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중국 부인이 “한국의 성형술이 발달했다는 데 내 얼굴을 모두 개조하고 싶다”면서 한국 내 유명한 의사 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미인대열에 합류를 열망하는 그의 호소 어린 눈망울은 무리에서 낙오된 기러기가 대오를 추격 코자 절규하는 애절한 날개 짓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 여인의 안면 미화공사에는 상당한 견적액이 산출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모두 외모에만 올인 해야 하는가? 아니다, 지성과 미덕이 없는 미모는 향기 없는 꽃일 뿐이다. ‘장애인의 집’에서 봉사의 땀을 흘리고 있는 여성들과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엄마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은 눈에 기쁨을 주지만 마음이 아름다운 여인은 영혼에 기쁨을 주는 법이다. 한 손에는 화운데이션을 다른 한 손에는 교양서적을 들고 덕성을 쌓아나가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여인상이 아닌가 한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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