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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마오 감격의 동티모르 귀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비바 사나나" "비바 사나나" .

22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동티모르 딜리의 옛 동티모르 주지사 공관 앞. 독립 지도자인 사나나 구스마오(53)가 모습을 드러내자 공관앞 광장에 모여든 3만여명의 주민들은 흥분상태에 빠졌다.

구스마오로서는 7년만의 귀향이다. 투옥과 연금이라는 길고 고독했던 독립투쟁의 한장을 넘긴 것이다. 그는 토속 현지어인 '테툰(Tetun)' 어로 15분간 연설했다.

구스마오가 "오늘의 기쁨은 그동안 희생된 수많은 동지들의 피땀 위에 이뤄진 것" 이라고 말문을 열자 군중들은 숙연해졌다.

그는 "미래를 위한 건설은 이제부터 시작" 이라며 "지금은 독립국가를 위한 과도기라는 사실을 알고 원칙과 도덕성(morality)을 다지며 다소 힘들어도 참고 기다리자" 고 호소했다.

구스마오의 귀향은 다국적군 진입으로 치안이 회복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자 지난 8월말 독립투표 이후 민병대의 학살에 쫓겨 불안한 생활을 해온 동티모르 주민에게는 독립을 실감하는 상징이었다. 테러위협을 피해 다국적군의 철저한 보호 속에 21일 오후 극비리에 입국한 구스마오는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투표 이후 최다 인파인 3만명의 주민들은 행사 시작 30여분 전부터 구스마오의 사진과 동티모르 저항국민회의(CNRT) 깃발을 흔들며 몰려 나왔으며 구스마오의 연설이 끝나자 질서있게 집으로 돌아갔다.

구스마오는 연설 마지막에 무장 독립단체인 '팔린틸(Falintil)' 의 사령관 타우르 마탄 루악의 손을 잡고 승리의 V자를 그렸다. 동티모르는 이제 오랜 식민지와 인도네시아 통치를 뚫고 자신들이 주인이 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군중속에 섞여있던 빅툰 수아레즈(37)는 "21일 유엔의 비행기를 얻어타고 서티모르 쿠팡에서 딜리로 돌아왔다" 면서 "우리는 굶고 얻어맞는 어려움을 참으며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고 말했다. 연설 중간중간에도 주민들은 '비바 사나나' 를 연호했으며 여인들과 노인들은 손뼉을 치고 눈물을 흘렸다.

독립투쟁의 상징인 구스마오는 포르투갈이 동티모르에서 철수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75년 인도네시아군이 침공하자 총을 잡고 정글로 들어간 그는 팔린틸을 결성하고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91년 사상 최대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뒤 체포된 구스마오는 20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와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에 대한 탄압이 가중될수록 동티모르의 독립열기는 높아졌으며 국제사회도 구스마오라는 프리즘을 통해 동티모르의 독립과 인권문제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자제하고 마지막까지 차분한 목소리로 연설을 끝냈다.

연설을 마친 구스마오는 삼엄한 경비속에 딜리에서 15㎞ 떨어진 '레메시오' 마을을 방문, 주민들을 위로했다. 레메시오 마을 주민이자 토목공학 교사였다는 호세 카마라(32)는 "한달동안 산속에서 살다 집에 와보니 아무 것도 없었지만 슬프지는 않다" 며 "구스마오 말처럼 빨리 국가재건에 한몫하고 싶다" 고 말했다.

주부 리디아 고메스(32)는 "많은 여자들이 아직 무서워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며 "그러나 구스마오가 온다기에 용기를 내 나왔다" 고 밝게 웃었다.

구스마오 귀향과 함께 난민들의 귀환도 본격화되고 있다. 22일 오전에는 서티모르 쿠팡에서 1천9백66명의 난민이 배편으로 딜리항구에 도착했으며, 육로로 귀향하는 버스행렬도 꼬리를 물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21일 오후 서티모르 아탐부아에서 난민 1백14명을 태운 버스가 처음으로 인도네시아군의 호위를 받고 무사히 귀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의 동티모르 승인 이후에도 독립반대파 민병대가 서티모르 국경지역에 출몰,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다국적군 대변인 마크 켈리 대령은 "지난 24시간동안 민병대들이 국경을 넘는 것이 목격됐다" 며 "민병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1백50명의 병력을 '국경지대에 '추가로 배치했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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