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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보다 낫다” 올 들어 7조원 넘게 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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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26면

2007년은 펀드, 특히 주식형 펀드의 시대였다. 1년 새 설정액이 70조원 불어났다. 지난해는 상반기만 놓고 보자면 주가연계증권(ELS)이 대세였다. 반년간 신규 발행액이 15조원에 달했다.그렇다면 올해는? 주식형 펀드는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설정액이 9조원 줄었다. ELS는 상반기 4조원이 신규 발행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대신 이들이 내준 자산 시장의 ‘권좌’를 ‘랩어카운트’가 이어받았다.

알아서 자산관리, 랩어카운트가 뜬다는데

지난해 말 12조원을 밑돌던 총 계약 자산은 8월 말 현재 19조원을 넘어섰다. 원금의 절반을 날릴 뻔한 펀드는 다시 쳐다보기 싫고, 그렇다고 쥐꼬리만 한 예금 이자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대안으로 랩을 찾았다. 여기에 증권사들도 전략적으로 랩을 밀었다. 펀드보다는 돈이 더 남고, 주식 중개 수수료보다는 장기·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랩이 유행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가입했다간 ‘묻지마’ 펀드 투자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 증권사의 운용 능력과 투자 전략에 따라 수익률 차가 큰 만큼 꼼꼼히 따져 상품을 골라야 한다.

주주총회도 참석할 수 있어
랩어카운트는 ‘포장하다’란 뜻의 ‘랩(Wrap)’과 ‘계좌’를 의미하는 ‘어카운트’가 합쳐진 말이다. 증권사가 알아서 고객의 투자 계좌를 한꺼번에 싸서 한 묶음으로 관리해 준다는 의미다. 일임형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돈을 맡기면 투자자의 성향에 맞춰 돈을 어떤 종류의 자산에 얼마만큼을 배분할지, 구체적으로 어떤 주식을 얼마에 살지와 팔지 등을 조언하고 매매도 대신해 준다.

랩은 자산관리 형태에 따라 ‘컨설턴트형 랩’과 ‘펀드형 랩’으로 구분된다. 컨설턴트형은 증권사 랩 운용 부서의 전문가들이 직접 고객 자산을 관리한다. 현재 증권사들이 팔고 있는 대부분의 랩이 이에 해당한다. 펀드형 랩은 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등장했다. 1만 개에 육박하는 펀드 가운데 뭘 골라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에게 자신의 투자 성향에 가장 맞고 성과가 좋은 펀드를 골라 포트폴리오를 짜 준다.

랩은 전문가가 알아서 자산을 관리해 준다는 측면에서 펀드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펀드가 투자자의 돈을 큰 술통에 담아 한꺼번에 발효(운용)시키는 것이라면 랩은 각각의 작은 술통에 따로 담아 익히는 셈이다. 고객 계좌별로 전문가가 어떤 종목을 사고파는지, 어떤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바로(결제일 기준) 파악할 수 있다. 기준가만 알 수 있는 펀드보다 운용이 투명하다. 또 고객별로 계좌가 따로 관리되기 때문에 투자 종목의 비중 조절이나 종목 선택 과정에서 투자자의 의사를 일부 반영할 수 있다.

펀드 명의가 아니라 투자자 자신의 명의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도 가능하다. 펀드에 가입하면 수익자 총회에 참석하라는 편지를 받지만 랩 가입자는 주주총회 안내장을 받는다. 랩에 편입된 종목이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 청약할지도 증권사가 아니라 투자자가 직접 결정한다.

투자 상품을 바꿀 때도 절차가 간편하다. 예를 들어 투자 성향이 ‘중립형’으로 분류된 투자자가 이보다 위험등급이 높은 주식형 펀드나 파생상품에 가입하려면 ‘투자자 확인서’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 반면 랩은 한 번 계약하면 이후엔 새로운 상품에 가입하더라도 확인서를 따로 작성할 필요가 없다. 랩은 ‘초고위험’으로 분류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펀드와 달리 운용에 제약이 없다. 주식형 펀드는 주식 투자 비중이 최소 60%는 넘어야 하고, 한 종목의 편입 비중은 전체 펀드 자산의 10%를 넘길 수 없다. 그러나 랩은 주식형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운용자가 시장 상황이 안 좋다고 판단하면 주식을 한 주도 편입하지 않을 수 있다. 또 특정 종목이 유망해 보인다면 그 종목을 계좌 자산의 10% 넘게 투자할 수도 있다. 리스크 관리와 집중 투자를 통한 초과 수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랩은 자산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진다. 일견 비슷해 보이는 주식형 랩이라도 어떤 종목군에 집중 투자하느냐에 따라 수익률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우리투자증권 최영호 랩운용부장은 “랩은 개인별 맞춤형 상품이기 때문에 자신의 투자 성향을 잘 파악하고 난 후 선택해야 후회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또 증권사가 알아서 자산을 관리해 주지만 랩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투자하려는 랩의 특성은 물론이고 금융 시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투자자문사 서비스 이용 효과
랩은 계좌별로 관리되기 때문에 펀드처럼 공시를 통해 수익률을 확인할 수는 없다. 증권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체로 랩의 운용 성과는 시장 수익률을 웃돈다. 대신증권의 ‘부자베스트펀드랩’은 지역별·자산별 펀드 분산 투자를 통해 위험을 줄였는데도 연초 이후 지난달 말까지 50% 웃도는 수익을 올렸다. 삼성증권의 대표적인 주식 투자 랩인 ‘정석포트폴리오랩’은 2005년 7월 운용 개시 이후 지난달 말까지 누적 수익률이 113%에 달한다.

고객 맞춤형 상품 설계와 양호한 수익률에도 그간 랩은 일부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대개 최소 1000만원은 있어야 랩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이 파는 특정 랩은 10억원이 있어야 투자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액 투자자들을 위한 적립식 랩도 나왔다. 대신증권과 현대증권이 내놓은 펀드랩이 대표적이다.

랩을 통해 유명 투자자문사에 돈을 맡기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대우증권이 최근 선보인 ‘한가람VIP랩’은 5000만원만 있으면 각종 연기금 자금 운용을 통해 역량을 입증 받은 한가람투자자문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대우증권 상품기획부 이정훈 팀장은 “최근 시장에서 투자자문사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3억원 미만의 투자자는 투자자문사에 투자할 수 없었다”며 “이 상품을 통해 적은 돈으로도 투자자문사의 안정적인 관리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금의 성격을 가미한 상품도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다달이보너스랩’이 그렇다. 5000만원 이상에 가입할 때는 한 번에 예상 수익률을 계산해 이를 투자기간(60개월)으로 나눠 매달 지급한다. 예상 수익률이 오차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만기 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 밖에 한국투자증권의 ‘부자아빠알짜포트폴리오’는 이 상품 하나만 가입해도 전체 자산의 관리가 가능하다. 국내 펀드는 물론이고 해외 펀드, 채권·실물자산 및 ELS·주식워런트증권(ELW) 등 주가연계상품 등 거의 모든 형태의 자산에 투자한다. 현대증권의 ‘W-SAVE펀드랩’은 각각의 펀드에 별도로 가입하는 것보다 수수료가 더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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