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연설에 담긴 뜻] "정권위한 개혁 조목조목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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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작심하고 '개혁 논쟁' 에 나섰다. 상대방은 물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다.

'개혁' 은 우리 시대의 명제로, 현 정권이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내걸었다. 李총재는 金대통령이 선점(先占)해온 개혁론에 여러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20일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金대통령의 개혁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정권을 위한 개혁" 이라고 단정했다. 구체적으로 ▶정략적 개혁▶오만.독선에 가득 찬 개혁▶비전.원칙도 없는 무분별한 개혁▶개혁만능주의라며 거친 표현을 섞어 비판했다.

그런 주장의 이유는 이렇다. "개혁이란 명분으로 그동안 우리 국민이 땀흘려 이룩한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부정되거나 해체되고 있다" 는 주장이 그 하나다.

이 사례로 李총재는 '재벌개혁' 을 꼽았다. "재벌개혁이 대기업 해체를 뜻하는 것이 아닌 데도 그런 방식으로 진행돼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는 게 李총재의 시각이다.

'개혁실패' 의 또다른 까닭으로 李총재는 "총선을 의식해 물량적 성과 중심으로 졸속 추진되고 있다" 는 점을 들었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증가율을 무려 30%까지 높여 물가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는 등의 논리로 그같은 견해를 뒷받침했다. 투신사 구조조정이 내년 7월 이후로 늦춰진 것도 "총선 때문" 이라고 보았다.

李총재는 "(정권의 개혁정책이)외국자본의 요구를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과속으로 추진되는 것도 문제" 라며 "선진 외국에서 10여년에 걸쳐 달성했던 기업부채율 2백% 기준을 단 2년 만에 맞추라고 강요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李총재가 그런 확신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국민은 무분별한 개혁만능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는 여론. 개혁만능주의 사례로 "심지어 언론과 시민단체까지도 개혁 대상으로 전락시켜 통제하려고 한다" 고 꼬집었다.

때문에 "개혁이 국민의 동참을 못얻는다" 는 게 李총재의 결론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李총재의 발언은 개혁 과잉에 불안해 하고 있는 대다수 중산층을 염두에 뒀다" '면서 "여권 일각에서 제기돼온 개혁 속도 조절론에 영향을 미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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