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워킹맘은 괴로워] “초등 저학년생 점심 걱정이라도 학교서 해결해줬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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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워킹맘 커뮤니티 사이트 ‘맘스쿨’의 차은경(42·여) 부장, 중소 건설회사에 다니는 전지헌(32·여)씨, 중견 인터넷 회사 김원현(37) 과장. 이들이 털어놓은 사연은 ‘워킹맘 행복사회’를 위해 우리 사회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 각인시켰다.

#육아 휴직은커녕 조퇴도 눈치 보여

▶차은경=7년 전 이곳에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전엔 네 곳의 회사를 전전했다. 애가 셋이나 되니, 번갈아 가며 아플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잠시 빠져나올 수 있는 회사가 한곳도 없었다.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했다.

▶전지헌=이전 직장이 그게 심했다. 면접 때부터 ‘가정 일로 회사 비우는 건 용납 못한다’고 했으니까. 그 직장 다닐 때 아이가 고열로 일주일 동안 입원했다. 연차는커녕 애가 아프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자영업 하는 남편이 낮에 병실을 지키고 내가 병원에서 밤을 새운 뒤 바로 출근하는 식으로 일주일을 버텼다.

▶차=가슴 아픈 건 말로 못한다. 얼마 전 막내딸이 학교에서 초경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일단 집에 가라’고 보냈다더라. 딸은 당황해하는데 회사를 빠질 수도 없고….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생리대 사용법을 일러주는데 가슴이 아렸다.

▶김원현=엄두가 안 나서 아예 아기를 4년 동안 지방에 사는 부모님께 맡겼다. 사회 기반이 안 돼 있으니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도 맞벌이들은 다 본가·처가의 희생에 기대 산다.

왼쪽부터 중3·중2·초4 자녀 셋을 둔 ‘맘스쿨’의 차은경 부장, 다섯 살짜리 딸을 둔 김원현 부장(중견 인터넷 회사), 네 살된 딸을 둔 전지헌씨(건설회사). 이들은 16일 서울 을지로6가 맘스쿨 사무실에서 만나 워킹맘의 고충과 꿈에 대해 얘기했다. 이들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교육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김성룡 기자]


#안심하고 아이 맡길 기관 늘어야

▶전=중앙일보 기사에도 나왔지만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꾼다. 예전 다니던 학습지 회사는 출산 휴가만 끝나고 와도 자리가 없어졌다.

▶차=북유럽은 엄마 못지않게 육아 휴직을 내는 아빠도 많다고 한다. 엄마에게만 몰린 육아 부담을 가족 안에서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집만 해도 ‘가사나 아이 교육은 엄마 몫’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조금만 힘들다고 해도 ‘그러니까 회사 그만두라’는 말이 나온다.

▶전=아침에 아이 밥 먹이고 씻기고 어린이집 데려가는 것, 저녁에 집안일 하는 것 다 내 몫이다. 싸우기 싫어 아예 말을 안 한다. 남편만 좀 바뀌어도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김=매주 스케줄을 체크해 가사를 어떻게 나눌지 상의하는 편이다. 설거지와 청소는 주로 내가 한다. 아무래도 아이 돌보는 것은 아내가 많이 한다. 남자들이 가정에 신경 쓰느라 야근·회식 빠지면 바보 취급받는 게 사회 분위기다.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남자들이 육아를 더 많이 도울 수 있다. 

▶차=정말 부탁하고 싶은 건 공교육의 방과 후 수업과 급식 체계다. 초등학교 갓 입학하면 한 달은 점심도 안 먹이고 집에 보낸다. 엄마들에겐 공포의 시간이다. 맘스쿨 사이트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질문이 ‘점심 어떻게 먹이느냐’는 것이다. 아파트 1층에 웰빙 식당을 만들자, 저소득층 아이들이 받는 식권을 살 수 있게 하자, 온갖 얘기들이 나온다. 공교육에서 신경 좀 써줬으면 한다.

▶전=아이 때문에 가끔 회사를 비워도 결국 업무를 다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눈치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 걱정이 없으면 훨씬 더 열심히 일할 것 같다.

◆특별취재팀=임미진·김진경·정선언·이진주·김기환·김효은·이승호·임현욱·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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