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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사계] 과학에 밀리는 '人海전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베이징(北京)시내 세차장에 가면 조금 거북살스러워진다. 승용차 한대에 10여명이 달라붙기 때문이다. 3분만에 차량 외부의 비누 세탁과 내부청소까지 말끔히 끝내준다.

비용은 10위안(1천4백50여원). 이래도 수지가 맞을까 싶다. '인해전술(人海戰術)' 은 중국의 일상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삿짐을 나를 때도 '민공(民工.막일꾼)' 20여명이 나타나 순식간에 끝내 버린다.

값싼 노동력 앞에선 굴착기도 경쟁력을 잃는다. 20명을 대신하는 굴착기의 하루 사용료는 2천위안. 그러나 노동자 일당은 20위안이다.

지난해 1백년만의 대홍수를 물리친 것도 인민해방군의 인간사슬이었다. 마대가 부족하자 몸으로 인간사슬을 형성해 제방붕괴를 막았다. 이처럼 중국은 인력(人力)이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넘쳐난다.

그러나 그런 중국에도 요즘 기계화.과학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높이 1백85m, 길이 3천35m로 20세기 중국 최대 토목사업인 후베이(湖北)성의 싼샤(三峽)댐 공사 현장. 미국.일본.독일에서 수입한 77t급 대형 덤프트럭과 5백20마력의 불도저 등 최첨단 장비의 굉음이 요란하다.

최대 저수량 3백93억㎥의 이 댐 건설에 투입된 인력은 1만명. 싼샤댐에 비해 저수량이 5백분의1밖에 안되는 베이징 근교의 스싼링(十三陵)댐 건설에 삽과 곡괭이.달구지로 무장한 40만명이 밤낮으로 매달리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일상생활에도 과학화.기계화가 빠르게 파고 들고 있다. 농촌에는 트랙터가 다니고 은행에는 주판 대신 계산기가 자리잡았다. 인터넷 이용자도 불과 6개월만에 두배가 늘어났고 2003년에는 3천4백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달 19일 인민대회당에선 중국을 군사대국으로 도약시킨 과학자 23명에 대한 '양탄일성(兩彈一星)' 훈장 수여식이 거행됐다.

원자폭탄(64년)과 수소폭탄(67년), 인공위성(70년)을 쏘아올린 과학자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중국은 지난 8월 '중국의 과학 노벨상' 을 만들었다. 과학발전에 공이 큰 사람에게 5백만위안의 상금을 주어 탐구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과학과 교육으로 나라를 일으킨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 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 등 현 최고지도부도 대개 이과(理科)를 전공한 인물들. 중국은 과학과 산업현장을 모르고는 최고권력층에 들어가기 어렵다.

이에 힘입어 과학기술 기반도 두터워지고 있다. 49년 건국 당시 1천여명이던 중국의 과학두뇌는 각종 전문 기술요원이 2천9백14만명, 과학기술 활동 종사자가 2백62만명으로 늘어났다.

중국의 과학기술 국제경쟁력은 이미 세계 13위로 영국.이탈리아를 앞섰다. 지난 8월 20일 중국은 국가의 방향을 기술.첨단과학.산업화에 집중한다는 이른바 '8.20 결정' 을 내렸다.

종이와 화약.나침반.인쇄술 등 '세계 4대 발명품' 을 만들어낸 중국의 옛 명예를 되찾겠다는 야심이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발달은 실업자 양산이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한해 소득 6백40위안을 밑도는 절대빈곤층도 4천2백만명에 이른다. 일터를 잃은 인해(人海)물결. 현대화 중국이 풀어야 할 최대 숙제이기도 하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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