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간 시진핑 ‘외교 관례 깬 행보’ 뒷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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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부주석이 지난 12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저서 두 권을 선물하고 있다. [베를린 신화=연합뉴스]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최근 독일을 방문하면서 외교 관례상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15일 보도했다. 시 부주석은 7일부터 벨기에·독일 등 유럽 5개국을 순방 중이다.

이 신문은 중국의 신화통신을 인용해 시 부주석이 5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쓴 책 두 권을 선물했다고 전했다. 책 제목은 각각 『중국 정보기술산업 발전을 논함』과 『중국 에너지문제 연구』다. 영문판으로 출간돼 14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막한 도서전에 전시됐다. 그는 이 책들을 선물하면서 장 전 주석이 메르켈 총리에게 보낸 안부 인사를 직접 전했다. 장 전 주석과 메르켈 총리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시 부주석은 그러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대신한 안부 인사는 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외교 관례상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중국 지도부의 해외 방문 시 의전은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시 부주석의 행동은 자기 의사라기보다 후 주석 등 9인으로 이뤄진 상무위에서 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 전 주석 지지 세력의 영향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시 부주석의 이 같은 행보는 중국 공산당 핵심부에 분열이나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공산당 17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17기 4중전회)에서 시 부주석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직에 오르지 못한 것도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아직 당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후 주석이 주축인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세력과 장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上海幇) 및 태자당(太子黨·전직 고위 관료들의 자녀들) 세력 간에 아직도 조정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시 부주석은 상하이방과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요즘 장 전 주석의 행보도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83세인 장 전 주석은 지난 1일 국경일 군사 퍼레이드 당시 후 주석 바로 옆자리에서 모든 행사를 지켜봤다. 당시 국영 중앙TV(CC-TV)는 장 전 주석을 20번 넘게 조명하며 그의 존재를 중국인들에게 알렸다. 그는 최근 허난(河南)성의 한 한자서예 박물관에 그의 서예작품을 내놓았다. 중국의 주요 언론 대부분은 이 소식을 톱뉴스로 다뤘다. 2005년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후 주석에게 넘기고 모든 공직을 떠난 그에 대해 아직 언론의 관심이 크다는 얘기는 그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홍콩 중문대학(中文大學)의 옹유킴 중국법 연구원은 “시 부주석이 장 전 주석의 책을 선물한 것은 후 주석을 무시하겠다는 것보다는 중국이 독일에 대해 에너지와 정보기술 등 경제 관련 교류만 원한다는 함축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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