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뷰] 그림 속 소녀, 그녀는 누구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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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그대로 닮은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그림은 누구라도 보는 순간 매혹당하는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 남아있는 35점 대부분이 그가 일평생 머물렀던 고향 델프트의 작업실에서 모델을 북서쪽 방향에 세우고 그린 것이라 어찌 보면 단조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섬세한 빛 처리와 질감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완벽한 묘사, 풍부한 상징을 담은 정물들로 구성한 치밀한 구도, 그리고 여기에 흐르는 은밀한 관능까지 더해 모두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진주 귀걸이 소녀'는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신비에 싸인 베르메르의 대표작이자, 네덜란드가 아직 한번도 외국에 임대한 적이 없는 보배다.

그러나 정작 이 그림에 대해서는 베일에 싸인 베르메르의 삶만큼이나 알려진 게 없다. 커다란 눈망울과 살짝 벌어진 입술이 무척 관능적인 이 소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매혹하는 동시에 매혹당하는 소녀의 눈빛만큼이나 보는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소녀의 왼쪽 귀에 매달린 진주 귀걸이는 혹시 무슨 사연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9월 3일 개봉.피터 웨버 감독)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지난해 국내에도 출간됐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귀고리'와 '귀걸이'는 둘 다 표준어임)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그림 속 소녀를 베르메르 집의 하녀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로 설정했다. 자신도 미처 모르던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유명 화가 베르메르(콜린 퍼스)를 눈빛만으로 사랑하는 열여섯살 소녀, 그러나 이마저도 그의 신경질적인 아내 카타리나의 질투와 시기심으로 미완으로 끝내야 하는 슬픈 눈망울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줄거리다.

그리트가 타고난 본능으로 당근과 양파, 붉은 양배추의 색이 서로 어울리게 가지런히 접시에 담아 요리를 준비하는 첫 모습을 비롯해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다 한편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그리트가 베르메르의 작업실을 청소하며 처음 마주치게 되는 그림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이나 그리트가 청소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물주전자를 든 여인', 베르메르의 든든한 후원자인 라이벤을 위해 그린 '포도주 잔을 든 여인' 같은 베르메르의 작품을 영화 속에서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물론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베르메르가 그리트를 모델로 '진주 귀걸이 소녀'를 그리는 장면이다.

로뎅과 그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을 다룬 영화 '카미유 클로델'(1989)처럼 격정적인 로맨스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이 영화가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드러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에게는 잔잔한 재미를 줄 듯하다. 15세 관람가.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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