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 투쟁-회피-굴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50여년의 한국언론사는 숱한 권력의 간섭.탄압과 이에 대한 언론의 투쟁.회피.굴종 사례로 점철돼 있다. 권력과 언론이 서로 상대의 기능과 역할을 존중해 간섭도 투쟁도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민주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에서 이런 시기는 별로 길지 않았다. 1960년 4.19 이후 민주당정권 시절은 확실히 그랬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6공화국 이후 정권마다 그런 시기가 다소간씩 있었던 것 같다. 권력의 언론 간섭.탄압이 있었던 시절중에는 이 문제가 시끄러웠던 때가 그래도 언론상황은 좀 나은 때였다.

언론인.언론사.언론단체가 권력의 간섭에 대해 투쟁하고 보도할 수 있었기에 시끄러웠던 것이다. 이 때의 언론탄압은 법을 내세운 사법처리와 때로는 테러를 무기로 했다.

자유당 정권 후반기와 5.16 군정기 및 공화당 정권 초기에 언론인과 언론사에 대한 테러.구속사례가 많았다.

그러다 언론에 대한 간섭과 탄압이 그야말로 제도화되면 세상이 시끄러울 사법처리나 테러는 거의 사라졌다. 전화 한통, 언론인 연행.고문 정도로 조용히 목적을 대개 이룰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선 타사 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회사 소속 기자나 편집간부가 정보기관에 잡혀가 매타작을 당해도 대개는 보도하지 못했다.

굴종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대체로 60년대 후반부터 유신시대를 거쳐 1987년 6.29선언 전까지가 그러했다. 물론 이 시절에도 간헐적으로 언론자유수호운동이 일어나곤 했으나 언론사 경영층까지 확산되지 못해 동아일보 광고사태를 제외하고는 지면에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필자는 언론계 선배들로부터 60년대 중반의 경향신문 탄압.공매에 대한 언론계의 외면과 대응 회피가 언론의 굴종을 가져온 결정적 전기(轉機)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투쟁과 굴종 사이에 문제회피와 외면의 단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경향신문은 1964년초부터 여러 건의 필화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는데 65년 4월 무전간첩단사건에 휘말린 것이 결정타였다.

경향신문은 자유당 정권 시절 대표적 야당지로 4.19전 1년간 문을 닫는 비운을 겪었고, 복간 후에도 비판기조가 이어져 권력에겐 불편한 존재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당시 경향의 사주는 얼마 전 천주교측으로부터 경향을 무리하게 인수한, 별로 인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중앙정보부는 4월 8일 언론기관 배후조종 사명을 띠고 남파된 간첩에 포섭돼 암약한 혐의로 경향의 체육부장 구속을 발표한 데 이어 이날 밤 사장과 업무국 부국장을 반공법(불고지죄)위반혐의로 잡아갔다.

전년 연말 북한으로 도피한 경향 도쿄(東京)지사장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편의를 제공하고 당국에 고발하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이런 과정에서 중앙정보부는 경향신문의 예금을 동결하는 등 재정적 압박을 가해 은행 채무의 연체를 유도하고 이 연체를 이유로 경향신문은 우리 신문사상 처음으로 경매에 부쳐져 다음해 1월 경영권과 함께 한동안 신문 성격이 바뀌는 수난을 당했다.

경향이 권력의 혹심한 탄압을 받는 동안 다른 신문들은 거의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거기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시로는 반공법 위반사건이라 하면 매우 엄중한 문제였기 때문에 함부로 끼어들기 어려운 분위기도 있었다. 더구나 권력측의 상당한 압력도 작용했을 것이다.

거기에 당시 경향 사주에 대한 언론계 일반의 경멸감과 동류의식 결여가 크게 작용했다. 신문사간 과잉경쟁도 한 요소였다. 당시 신문철을 들춰보면 경향신문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경향사태를 언론탄압으로 보도하는 신문보도나 논조는 거의 없었다. 경향 편집국장의 요청에 의한 신문편집인협회의 진상조사 결과도 정치적 압력 여부를 조사했으나 구체적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며 국회특위가 국정감사권을 발동해 철저히 조사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다만 동아일보는 경향 공매가 끝난 66년 1월 27일 대부분의 신문기업체가 은행채무를 지고 있는 이상 이번 경향의 수난은 언론계의 공통된 관심사로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사설을 통해 지적했다.

그때 언론계가 진작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힘을 합쳐 대응했더라면 그 이후의 언론상황이 그토록 나빠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도 중앙일보 사태에서 그때와 비슷한 언론계의 외면과 문제의식 결여를 실감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망한다는데 왜 우리의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성병욱 상임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